고 정주영 회장, 바덴바덴에서의 전력투구
이채윤 CTN논설위원
가금현 기자입력 : 2026. 03. 23(월) 17:18
가가
교육타임즈 97호
실천하라 정주영처럼/CTN]바덴바덴으로 떠날 무렵, 정주영은 정부에서 지명한 추진위원 가운데 그냥 여행이나 즐기고 올 것 같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신 유창순 씨와 이원경 씨 등 유능한 인사 몇몇을 새로 영입했다. 올림픽 유치에 미온적이었던 일부 기업인들 동원에는 약속대로 안기부가 나서 주었다.
정주영은 출발에 앞서 일찌감치 8월 중순에 벌써 프랑크푸르트 '현대' 지점에 올림픽 유치 활동 팀에 대한 만반의 준비 명령을 내려두었다.
9월 15일, 정주영은 IOC총회 참석차 런던에 가서 올림픽위원장을 만나고, 16, 17일은 벨기에의 한 · EC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룩셈부르크로 가서 장 드 황태자와 만찬을 하는 등, 올림픽 유치를 위한 순방 로비 활동을 마치고 9월 20일 육로로 바덴바덴에 도착했다. 정주영은 독일에 주재하고 있는 현대그룹 임직원을 총동원,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뛰었다.
그곳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현대' 지점의 전 직원과 그 부인들, 그리고 밥하는 아주머니들까지 바덴바덴으로 아예 지점을 옮겨놓고는 현지 사무소 준비와 임대 저택 확보까지 완벽하게 끝내놓고 있었다. 임대 저택을 근거지로 지점 전 직원을 상주시키면서 유치 활동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고, 별도로 얻어놓은 시내 사무실은 대표단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9월 24, 25일까지는 조중훈 회장, 김우중 회장, 최윈석 회장 등의 기업인들이 대부분 다 모였고, 미국인 실업가 더글러스 리, 경기도지사 김태경은 그보다 며칠 먼저 와 있었다. 유창순, 이원경, 이원홍 씨도 9월 24일에는 도착했고, 세계태권도연맹 김운용 회장이 왔고 통역을 맡았던 KBS 아나운서 차명희는 20일쯤에 도착해 있었다.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유력시되는 곳은 일본의 나고야였다. 뒤늦게 뛰어든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가능성은 너무 희박하였다. 더구나 일본의 나고야는 개막 이틀 전인 18일에 벌써 나고야 시장까지 도착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IOC 위원이나 개최지 유치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할 서울 시장조차도 나타나지를 않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IOC 위원들이 투숙한 브래노스 파크 호텔 출입은 IOC 위원에게만 출입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IOC 위원이 빨리 와 투숙해주어야만 그를 만난다는 구실로 드나들며 다른 나라 IOC 위원과 접촉할 수 있는데,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었다.
정주영은 민간인들이 총대를 메고 올림픽 유치에 성공해보자고 기를 쓰고 움직이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그 지경인 데는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일을 하자는 거요, 안 하자는 거요? 서울에 유치하겠다는 서울올림픽인데 서울시장이 나타나나, IOC 위원이 나타나나, 모두 왜들 이러는 겁니까?”
정주영은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연락해서 부인과 파리에 있는 IOC 위원을 수배하기에 이르렀다. 김택수가 나타난 것이 23일이었고, 서울시장은 24일에야 도착했다.
어쨌거나 정주영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부터 새벽 전략 회의를 소집했다. 각자의 하루 일과를 정하고 득표 상황도 점검하고, 새로운 전략도 짜서는 쫙 흩어져 하루 종일 뛰고, 저녁에 다시 모여 점검하고, 재 전략을 짜고 하는 식이었는데, '현대'식의 이러한 강행군에 대사관 직원이나 관리들은 처음에는 모두 불만이 기득한 얼굴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주영은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서울, 중동, 동남아 할 것 없이 챙겨야 할 회사 일을 전화로 한 바퀴 전부 챙기고는, 7시면 어김없이 올림픽 유치 전략 회의를 했다. 투덜대기도 했고 건성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신신당부를 하고 재삼재사 주지시키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며칠 지나니까 차츰 정주영의 지시를 따랐다. 정주영은 아침 회의를 끝내고나서면 하루 종일 I0C 위원들이 있는 곳이라면 숙소든 별장이든 식당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뛰어다니다가, 밤 11시나 돼야 숙소로 돌아오고는 했다. 정주영 일행은 IOC 위원들을 만나기 위해서 고무줄로 묶은 명함 뭉치를 들고 거지들처럼 회의장 밖을 종일 지키고 섰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뛰고 숙소로 들어가면 그 피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아이고 죽겠다' 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정주영은 목욕물에 들어가 앉아 그대로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주영은 '반드시 유치'한다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일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대표단으로 나와서 겨우 창피만 안 당하고 만다면, 그거야말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IOC 총회가 열리는 호텔 로비에 홍보관이 있었고 그 옆에 일본의 나고야관이 있었다. 유치에 자신이 있었던 나고야관은 사진 몇 장 걸어놓은 것밖에 보잘 것이 없었다. 우리는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후회 없이 해보자고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미스코리아들과 대한항공의 스튜어디스들에게 한복을 입혀 친절한 안내를 하게 했고, 한국 고유 문양을 넣은 부채와 인형, 지게, 버선, 짚세기들을 선물로 안겨주면서 최선을 다한 결과, 며칠 지나자 파리 날리고 있는 나고야관 옆에서 한국관만 북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지 언론은 아주 비정하고 혹독했다. 우리 대표단이 마치 절대로 들여놓으면 안 되는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IOC 관계자, 언론 할 것 없이 '웃긴다'는 반응이었다. 현장에서 보도하는 신문이나 방송 기자들은 전부가 일본의 나고야가 결정적인 것으로 얘기했고, 그 말대로라면 한국은 가망이 전혀 없는 비참한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한국이 기생을 동원했다'는 외국 신문 기사가 나와 홍보관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미스코리아, 스튜어디스들을 갑자기 기생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정주영은 아들 정몽준에게 홍보관을 맡겨 손기정, 조상호, 정주영의 제수씨인 현대고등학교 장정자 이사장 등이 전시실에서 손님을 맞도록 해서 '기생설'을 잠재웠다. 파리 날리고 있는 나고야관 옆에서 문전성시를 이룬 한국 홍보관은 처음으로 기선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국의 유치 활동이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하자 방심하고 있던 일본도 가만있지 않았다. 일본은 "북한과 남한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서울에서 올림픽을 치를 것인가. 서울에서 올림픽을 치른다는 것은 88올림픽 자체를 없애는 것과 같다."는 등의 말을 하며 바람을 잡기 시작했고, 게다가 북한은 올림픽 유치 신청국이 아니면서도 한국의 올림픽 유치 방해를 목적으로 20여 명이나 파견해서 한국 대표단을 긴장시켰다.
정주영은 회의 때는 몇 차례나 유치단 모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북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먼저 악수를 청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할 것, 그러는데도 북한 사람이 욕을 하면 마주 대항하지 말며, 한국말을 모르는 다른 나라 IO위원들이 볼 때는 큰소리로 농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그저 웃는 얼굴로 들어줄 것.”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이러이러하게 나오면 이러이러하게 대응하라는 것까지 예를 들어가면서 일러주었다.
정주영 자신도 북한 사람을 만나면 먼저 반갑게 고향 사람 만나서 반갑다는 서두로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왔습니다. 내가 정주영입니다.” 하면 그들은 처음에는 "다 알아요."하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 해에는 남북한이 다 흉년이었는데도 "북한은 금년 농사가 대풍이라면서요?"하는 식으로 그들의 경계심을 풀고는, 이북의 명산대천에 대한 좋은 소리들을 골라 하면서 남한을 내세우는 얘기는 한마디도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이 사람들이 정주영만 보면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 같은 분만 남한에 살면 우리가 남북통일을 버얼써 했습네다.”
정주영은 북한 대표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땅에서 올림픽을 한 번 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이 협력해서 잘해 봅시다”
이렇게 동포애를 유발하며 호소하자 북한 대표는,
“우리 민족이 사는데서 해야지요.”하고 마음에 없는 대답을 했다.
정주영은 이미 나고야 쪽으로 굳어진 선진국 IOC 위원들보다는 소외되고 있는 중동 및 아프리카 IOC 위원들을 집중 공략하는 작전을 썼는데, 프랑크푸르트 '현대' 지사의 채수삼 지점장과 직원들의 사전 답사로 미리 익힌 지리 공부 덕택에 한국 대표단이 움직이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중동 위원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건설을 많이 했던 '현대'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쁘지 않은 '현대'의 이미지가 도움이 되었다. 정주영은 이를 백분 활용했다.
“우리나라의 일개 사업가도 일을 맡으면 신용과 책임을 지키는데, 국가가 책임지는 올림픽이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들도 언젠가는 올림픽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개발도상국도 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
정주영의 이러한 말은 그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 IOC 위원들에게 뭔가 정성이 담긴 선물로, IOC 위원 전원한테 보내는 꽃바구니를 만들어 보냈다. 그런데 정주영도 미처 생각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꽃바구니의 반응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꽃바구니는 단순히 주문된 것이 아니라 현대의 해외파견 직원 부인들이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만든 것이었다. 다음날 각국 IOC 위원들이 회의를 끝내고 로비에 모여 있던 IOC 위원들이 한국 대표단을 보자 앞다투어 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고야 시는 IOC 위원 부부에게 최고급 일제 손목시계를 선물했던 모양인데, 그것보다는 정성스런 마음이 당긴 꽃바구니가 부담도 안 주고 따스함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더구나 여자치고 아름다운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지 않은가.
꽃값이 제일 비싼 장미로 만들어진 꽃바구니가 각국 IOC 위원의 부인들을 아주 기쁘게 만들었다. 기뻐하는 아내를 보면 남편 기분도 좋아지는 법이다. 아내를 기쁘게 만들어준 데 대한 감사의 인사가 가는 곳마다 가득 했다. 이 꽃바구니는 회의가 끝나는 날까지 미처 시들기 전에 싱싱한 것으로 교체시켰다. 정주영은 세계 각국의 IOC 위원 전원에게 꽃바구니를 선물하기 위해, 꽃집의 꽃이 모자라 꽃밭을 통째로 사서 꽃바구니를 만들어 보냈다.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한 IOC 총회 청문회도 성공적이었다. 6명의 대표단을 단상에 앉혀놓고 했던 청문회는 국립영화제작소와 KBS가 공동 제작한 15분짜리 한국 소개 영화를 상영한 후 질문을 받는 식이었다. 빌딩이 숲을 이룬 서울 거리가 우선 우리나라를 아프리카의 오지 정도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IOC 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저기가 서울이냐? 도쿄나 LA와 다를 게 없잖냐?”
그린 웅성거림이 단상까지 들릴 정도였다. 가시 돋힌 질문이 없지는 않았지만, 되풀이했던 예행연습 덕분에 훌륭하게 청문회를 마쳤다. 만사를 제치고 달려온 우리 경제인들도 자기 돈을 쓰면서 각자 참으로 열심히 뛰어주었고, 대한체육회 조상호 회장, 최만립 총무도 정말 열심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달려와 모두 우리 대표단의 식사를 만들어했던 현대의 현지 직원 부인들도 모두 혼연일체로 열심이었다. 최전의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나고야 열풍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88올림픽 개최지 결정투표 전날인 9월 29일.
각국 기자단 모의 투표가 있었는데 서울시보다 나고야시가 우세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바람에 나고야시 유치 대표단은 미리 샴페인까지 터뜨렸다.
그러나 정주영은 그동안의 로비 활동으로 확보한 서울 지지표가 적어도 46표는 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46표면 서울 유치였다.
투표 당일, 오후의 투표를 앞두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모두들 결과에 대한 불안과 긴장으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정주영은 언론이 뭐라고 하든 최소한 46표는 나올 것으로 믿는다고 내기를 걸자고 했으나 모두가 침묵으로 대답했다. 다만 교섭 반장으로 매일 표를 점검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던 외교관 전상진이 정주영을 거들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는지 자기는 46표 보다 많은 50표 이상으로 생각한다면서 내기에 응했다.
시간이 되어 회의장으로 가는데 북한 사람들이 마치 우리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정 선생, 그만 수고하고 돌아가시죠."
정주영은 이제 오늘 결정이 나는데 결정되는 거나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대꾸했다.
"벌써 끝장났는데 뭘 그래요. 신문도 못 왔습니까?"
"독일 말 몰라서 못 봤습니다."
"다 끝났다고 썼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시죠. 도저히 되지도 않을 것, 몇 표 나오지도 않을 텐데 왜 다닙니까?"
“그래도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니니 결과를 두고 봐야죠.”
정주영은 부지런히 발표장으로 향하였다.
드디어 오후 3시45분, 제24회 올림픽 개최지 발표의 순간이 왔다.
“쎄울 코리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프랑스어로 이렇게 외쳤다. 그 순간 우리 대표단은 만세를 부르며서로 얼싸안고 환호하였다. 정주영이 예상했던 46표에 6표나 더 추가된 52표를 얻어 52대 27로 나고야를 물리치고 서울시가 88 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결정된 것이었다. 정주영도 놀랐고, 우리 대표단 모두가, 아니 한국인 모두가 놀란 득표수였다. 대표단은 정주영의 눈에서 흐르는 감격의 눈물을 처음으로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저녁 7시부터 서울시 주최 축하 리셉션이 열렸고, 이튿날은 정주영이 바덴바덴에서 가장 좋은 식당을 빌려 축하 파티를 열었다.
한국의 올림픽 유치는 세계를 놀라게 했고 한국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세계의 변방 국가에서 중심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주영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유치하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발전을 이끌어 나갔으며,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굳건한 자부심을 지닐 수 있도록 공헌했다.
정주영은 이렇게 사업이 아닌 사업 외적인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함으로서 일반인들이 배워야 할 값진 교훈을 만들어 냈다. 그는 평생 스스로 개발시켜 나간 기업가적 자질들과 도전정신으로 혁신을 추구하며 얻은 체험들인 유 · 무형의 가치들을 상호 연결시켜 나간 시대의 거인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뚝심과 집념의 기업인으로 목표를 정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주영의 추진력이 서울올림픽 유치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정주영은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피선되어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했고,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2년 2개월간 대한체육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CTN·충청탑뉴스·CTN방송 발행인
가금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주요기사더보기

실시간뉴스

많이 본 뉴스

기사 목록

다양한 채널에서 CTN을 만나보세요!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