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민아카데미 강연을 마치고 !
— 95점짜리 아이가 무대에 섰다 !
조성찬 기자입력 : 2026. 09. 30(수)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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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아산아트홀 무대에서 '최고의 교사는 누구일까요'를 강연하는 조성찬 아산시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장
[에세이/CTN] 조성찬 기자 = 지난 29일 , 아산아트홀 무대에 섰다. 행복아산 시민아카데미의 시민강사로 15분. 박상미 교수님의 특강에 앞선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15분을 준비하는 데 나는 쉰 해 남짓한 내 삶을 처음부터 다시 걸어야 했다.

강연 제목은 '최고의 교사는 누구일까요'였다. 청중에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들여다본 생활기록부에 내 IQ가 적혀 있었다. 95.

누가 소리 내어 읽어준 것도, 누가 손가락질한 것도 아니었다. 그 숫자를 알아본 건 나 혼자였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판결을 내렸다. '나는 머리가 나쁜 아이구나. 그래서 공부도 잘 못하는구나.'

낙인은 남이 찍어야만 생기는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숫자를 등에 지고 청소년기를 걸었다. 시험지를 받을 때도, 손을 들까 말까 망설일 때도 95는 늘 먼저 와서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붙들어 준 건 아버지였다.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지만 여섯 가지 일을 해내실 만큼 부지런하셨던 분.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시고, 저녁 밥상머리에서는 꼭 물으셨다.

"오늘 너희들이 공부한 내용 말해봐라."

몇 점을 받았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몇 등을 했느냐고도 묻지 않으셨다.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으셨다. 그때는 그 질문이 왜 다른지 몰랐다. 아이를 키우고, 22년 동안 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야 그 질문의 무게를 알았다.

수능 성적표를 받던 밤도 그랬다. 떨리는 손으로 성적표를 내밀며 "아버지, 죄송합니다"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성적표를 한참 들여다보시고는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셨을 뿐이다.

그 침묵이 어떤 꾸중보다 컸다. 혼내지 않으신 게 아니었다. 믿어주신 것이었다. 그 믿음을 등에 업고 나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학사장교로 임관했다.

태권도사관학교를 연 지 22년. 도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가운데에는 유난히 눈에 밟히는 아이들이 있다. 품새를 늦게 따라오는 아이, 승단 심사에서 또 떨어진 아이, 형이나 친구와 비교당해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아이.

나는 그 표정을 안다. 생활기록부를 덮던 날 내 얼굴이 꼭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다그치지 않으려 한다. 작은 컵에 큰 컵만큼 물을 부으면 넘친다. 넘침은 컵의 잘못이 아니라 붓는 사람이 그릇을 몰랐기 때문이다. 감정이 먼저이고 능력은 그다음이다. 내가 감선능후(感先能後)라 이름 붙인 이 원리를, 나는 책보다 아버지에게서 먼저 배웠다.

팔랑귀 조성찬 !


"나는 잘했다"

강연을 준비하며 시 한 편을 썼다. 무대에서 그 시를 아산시민들 앞에 내놓았다.

나는 잘했다.
내가 대한민국 장교가 된 것은 잘했다.
그것은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한 지 450년 만에, 그 후배 장교가 된 것이다.

내가 태권도 사범 지도자가 된 것은 잘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기(國技) 태권도를 이어받은 것이다.

내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원이 된 것은 잘했다.
그것은 나라를 지킨 이들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산시민이 된 것은 잘했다.
그것은 아산이 너무 살기 행복한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해서 아버지가 된 것은 잘한 일이다.
그것은 나의 삶에 존재 이유가 된 것이다.

생활기록부 앞에서 "나는 머리가 나쁜 아이구나"라고 스스로 판결을 내렸던 소년이, 반세기 가까이 지나 처음으로 "나는 잘했다"고 말해본 것이다. 무대 위에서 이 구절을 읽는데 목이 조금 메었다. 그 말은 청중에게 한 말이기도 했지만, 1998년에 먼저 떠나신 아버지께 드리는 대답이기도 했다.

아버지, 저 잘 살고 있습니다. 그날 밤 약속드린 대로요.

사람들은 나를 '팔랑귀'라 부른다. 남의 말에 귀가 잘 팔랑인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그 말이 조금 부끄러웠다. 지금은 그 귀가 고맙다.

말로 가르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한다는 것,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그 아이의 그릇이 보인다는 것을 이 귀로 배웠다. 아버지의 침묵도 결국 듣는 일이었다. 말하지 않으시고 내 안에서 무엇이 자라는지 가만히 들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무대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었다.

"최고의 교사는 더 많이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보다 먼저 그 그릇을 알아보고 기다려주는 사람입니다. 제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요."

오늘 밤 누군가의 집에서, 성적표 앞에 선 아이 곁에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주는 부모가 한 사람이라도 더 있기를. 팔랑귀는 오늘도 그런 기다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조성찬 | 아산시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단장·어울림태권도사관학교 관장·에세이집 『팔랑귀』 저자.
조성찬 기자 sungsoi@naver.com
주경야독!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한그루 푸르른 조선 소나무! 목원대학교 사회체육학전공 학사! 유원대학교 경찰행정학전공 학사! 순천향대학교 체육교육전공 교육학석사! 공주교육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전공 교육학석사! 공주대학교 교육상담전공 교육학박사 수료 ! 남서울대학교 코칭학 박사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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