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의 칼럼] 당연하게 마셔온 공기, 그 지독하고 묵직한 무게
신동호 기자입력 : 2026. 10. 19(월)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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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N 신동호 논설위원
[CTN칼럼]논설위원 신동호=“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무게를 잘 모른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고서야 비로소 깨닫는 진실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저울이 놓여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내어주고, 때로는 꿈과 인생마저 뒤로 미룬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는다.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자식의 작은 웃음 하나에 고단한 하루를 잊는다. 자식의 성장이 부모에게는 삶의 보람이자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은 그 무게를 알지 못한다.

매일 마시는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듯, 자식은 부모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신을 위해 잠 못 이루던 밤, 말없이 삼켰을 한숨, 아픈 몸을 이끌고도 내색하지 않았던 날들. 자식은 그 모든 것을 부모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인다. 그 뒤에 감춰진 걱정과 인내를 헤아리기에는 삶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도 부모가 되거나 늙어가는 부모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뒤늦게 깨닫는다. 당연하게 누려온 평온한 일상이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누군가의 젊음과 눈물, 말없는 인내 위에 자신의 삶이 세워졌음을 말이다.

하지만 깨달음은 늘 한발 늦다. 부모가 젊고 건강할 때는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비로소 이해할 즈음이면 부모는 어느새 늙어 있다. 더 잘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질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흘러버렸을 수도 있다. 이것이 부모를 둔 자식이 마주하는 가장 아픈 진실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부모가 내게 내어준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다. 나를 위해 감내한 고통을 똑같이 나누어 짊어질 수도 없다. 부모의 헌신은 받은 만큼 돌려드린다고 해서 온전히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니다. 내가 받은 것을 내 자식에게, 또 다음 세대에 전하는 내리사랑으로 비로소 이어진다.

부모에게 받은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고, 그 자식이 다시 자신의 자식을 보살핀다. 그렇게 한 세대의 헌신은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받는 사람은 그 깊이를 다 알지 못하고, 주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어주는지조차 잊는다. 어쩌면 이 기울어진 저울이야말로 인류가 오랜 세월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힘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살필 여유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작은 평온과 오늘의 삶은 결코 혼자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의 보상 없는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부모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자식은 없을지 모른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겪어온 고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멈춰서는 안 된다. 부모가 내게 해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부모님이 곁에 계신다면 오늘 안부 전화 한 통을 드리자. 시간이 없다며 미뤄온 식사 한 끼를 함께하고, 쑥스러워 건네지 못했던 고맙다는 말도 전하자. 효도는 거창한 선물이나 특별한 날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그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 잠시 휴대전화를 열어 부모님의 사진을 바라보자.

사진 속 부모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지만, 우리가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젊었던 얼굴에는 세월이 내려앉았고, 그 세월의 상당 부분은 어쩌면 나를 위해 흘러갔을 것이다.

평생을 살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가 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이다.

그 이름은 부모다.

당연하게 마셔온 공기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몰랐던 부모의 마음. 이제는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헤아리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깨달음이 늦어질수록,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지기 때문이다.
신동호 기자 jscar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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