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CTN]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고 건강한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낙관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 정주영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에서

1.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기적으로 분초를 다투는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은 종종 ‘침착하자’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인다. 만약 실패의 가능성이 짙어지기 시작한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라. ‘침착하자’ 이것은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 제프리 J. 폭스

위기를 기회로!

현대경영에서 위기는 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위기는 언제 어디서 복병처럼 닥쳐올지 모른다. 위기가 닥치면, 조직 구성원들은 초조와 불안, 혼란에 휩싸인다. 이럴 때 진정한 리더의 리더십이 드러나는 법이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같이 흔들리면, 조직은 침몰하는 수밖에 없다. 성공한 리더는 주어진 위기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킨다. ‘시련과 역경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믿는 그야말로 쉽지 않은 리더의 최대 능력이다.
정주영의 사업이 정상궤도를 향해 성장해 갈 무렵 6 · 25전쟁이 터졌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피난길을 떠났던 정주영은 부산에 도착해 우여곡절 끝에 미8군 후방기지 사령부의 공사를 따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정주영은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현대건설을 계속해서 운영해 나갔던 것이다.
정주영은 시련이 닥치면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했다. 즉 "건설이란 평화 시절에는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고 전쟁이 나면 전쟁에 빠른 공사를 할 수 있으니 사업에는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라면서 공사수주에 전력을 투구했다.
정주영에게는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 출신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동생 정인영이 있었다. 정인영은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가 미8군 공병감실 소속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공병대 미군 장교를 형 정주영에게 소개했다. 정주영은 특유의 친화력과 사업수완을 발휘해서 부산 수영 지역의 미군 병사 간이 숙소 공사를 맡았다. 이 공사를 통해 정주영 ·인영 형제는 미8군 군납 건설업자로 도약하는 날개를 달게 된다.
이때부터 정주영이 전반적인 운영을 이끌어갔고, 정인영이 미군 공사 수주를 받는데 필요한 제반 업무를 담당했다.
두 형제는 손발이 척척 맞아서 많은 관급 공사도 수주하기 시작했다. 현대건설은 교통부 외자청과 외자 보관창고 건설 및 창고 보관대행과 관련한 공사 계약을 맺게 되었다. 외자 보관 창고는 정부 지원자금으로 신축된 공사였는데다 이 창고의 보관업무를 대행할 수 있게 되어 월 2백 만 환의 보관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보관료로 현대건설은 1950년 7월 부산시 중앙동 4가 15-3번지 제 5부두에 연건평 2천 1백 67평에 외자 보관창고 3동을 신축했다.
그리고 정주영은 전쟁의 와중에 새로이 ‘현대상운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외자창고 · 보관 대행업을 하면서 세 척의 선박을 구입하여 해운업에도 진출했다. 전쟁기간 중에 미군부대가 발주하는 공사, 비행장 활주로의 건설, 최전선의 미군 공병대 공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수주함으로써, 현대건설은 꾸준히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전란으로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산업시설과 항만, 철도 등 사회간접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탓에 전후 복구 과정에서 정부는 각종 시설물을 발주했고, 국내 건설업은 활기를 띄었다.
당시 우리나라 건설업계의 실태는 기술이나 경험이 없어서 인천 제1도크 복구공사, 오산비행장 활주로 공사, 휴전선 지대 작전시설 등 미군 공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건설문화와 접하게 된다. 해외건설협회가 발간한 '해외건설 민간백서'(1984년 3월)에는 우리 건설업계가 미군 공사에 참여하면서 얻은 이득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미군 공사는 건설 기술과 경험의 축적을 가져왔으며 국제 계약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미군 공사는 국제 표준규격의 시방서와 설계도를 요구했으며 단순한 공사라도 계약과 감리는 영문을 사용하고 미군 기관에 의해 시행됐기 때문에 국내 건설업자들이 국제 표준 시방서의 해독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국제 표준 시방서에 따른 시공 및 품질관리 등을 경험함으로써 해외 건설 진출의 길을 여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또 시공 기술면에서 미군 공사는 어느 정도의 기계화 시공을 의무화했던 까닭에 장비 획득과 운용이 강행됨으로써 종전의 인력 의존 공사수행에서 탈피, 건설업의 선진화를 앞당기게 되었다.”

미군 공사 수행을 통해 현대건설은 공사수주, 계약, 기술 등에 있어 해외 건설에 필요한 경험과 훈련을 쌓는 기회가 되었으며, 여기서 실력을 갈고 닦아서 1960~1970년대에 해외 진출을 선도하며 대표적인 건설업체로 성장한 것이다.

고령교 복구 공사

고령교 복구공사는 정주영이 사업을 시작한 초창기에 겪었던 가장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이 공사에서 정주영은 불굴의 도전정신과 사업가로서의 신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대건설은 1953년 고령교 복구공사라는 대규모 공사를 맡았다. 그때까지 정부가 발주한 공사 중 최대 규모였다. 당시 계약 금액이 5천 4백 78만 환이었는데, 이는 한 해 동안 현대건설이 수주한 공사 계약액을 모두 합친 금액보다 많은 액수였다. 정주영이 그 고령교 복구공사에 큰 기대를 걸었음은 물론이다.
고령교는 대구와 거창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그때 정부는 지리산 공비토벌을 위해 시급히 복구해야 할 입장에 있었다. 1953년 2월, 내무부 토목국에서는 고령교 복구공사를 현대건설에 발주했다.
그런데 이 공사가 크나큰 횡액을 안겨주고 말았다. 공사는 1경간 60미터짜리 교체 두 개와 수심 10미터 계곡에 열세 개의 교각을 설치하는 난공사였다. 교량의 상부구조는 모두 파괴된 상태이고 하부구조인 교각도 기초만 남아 있는 형편이어서 말이 복구공사지 실제로는 새로 다리를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파괴된 상부 콘크리트 구조물이 물속에 잠겨 있어서 작업상의 장애요인이 많았다. 낙동강은 계절에 따라 수심의 변동이 심했다. 겨울에는 모래가 쌓여서 수심이 얕아졌다가 여름이 돼서 물이 불어나면 수심이 겨울철의 몇 배로 깊어지는 바람에 기초공사를 하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당시 국내에는 이렇다 할 건설 장비가 거의 없었다. 현장에 투입된 장비라고는 20톤짜리 크레인 한 대, 믹서기 한 대, 고정식 컴프레서 한 대가 고작이었다. 20톤짜리 크레인이라는 것도 동란 전 내무부가 시공 중이던 남강댐 공사에 투입했다가 그대로 공사장에 방치해 버린 바람에 녹이 슬고 다 고장 난 것을 수리한 낡은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업을 인력에 의존하는 원시적 방법으로 시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년이 지났다. 일 년이 지났지만 아직 열세 개의 교각도 다 세우지 못했다. 그동안에 물가는 곱절로 뛰었다. 기대를 걸었던 고령교 복구공사는 암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1954년에 들어서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고령교 착공 당시 700환으로 책정했던 기름단가가 2,300환이 되었고 앞으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얼마나 더 비싸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주영이 물가가 오르는 데서 오는 손해를 계산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계약 당시만 해도 그는 넉넉잡고 일 년 반이면 공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일 년 반 동안에 물가가 아무리 오른다고 해도 2배 이상은 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가는 뛰고 장비는 빈약하고 공사는 진전이 없었다. 정주영은 지금 자신은 엄청나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지 자금조달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다녔다.
정주영은 회사경상비를 줄이기 위해서 현대건설 사무실을 초동 자동차 수리공장 자리에서 소공동에 있는 삼화빌딩으로 방 두 개를 세 내어 옮겼다. 그리고 신규 사업을 모두 접고 오직 고령교 복구공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훗날 정주영은 만약 장비만 좋았었다면 지형상의 악조건은 문제될 것도 없었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공기를 단축해서 그동안에 오른 물가를 커버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었던 공사라고 회상했지만 고령교 복구공사는 그의 덜미를 단단히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고령교 공사로 인한 부채로 현대건설은 점차 마비되어가기 시작했다. 부채를 갚기 위해 정주영은 동생들과 매제의 집, 그리고 자신의 자동차 수리공장을 팔 수밖에 없는 형편에 몰렸다. 동생인 정인영, 정순영 그리고 매제인 김영주와 창립 멤버인 최기호 네 사람이 자발적으로 집을 내놓았고 곧 팔렸다. 1955년 1월, 네 사람의 집 판 돈 9천 9백 70만 환을 자본금으로 불입함으로써 현대건설은 총자본금을 1억 환(기존 자본금 30만 환, 설립당시의 3천만 원)으로 증자했다.
자금난이 풀어지자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고령교 복구공사 현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고령교 복구공사는 1953년 4월에 착공하여 26개월 만인 1955년 5월에 준공을 했는데, 정주영은 계약금 5,478만 환에 적자 6,500여 만 환이라는 거대한 적자를 보았다. 이 돈은 후에 정주영이 ‘20년 동안 갚았다’고 말할 정도의 큰 손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령교 복구공사를 끝낸 현대건설 사무실에는 아침저녁으로 빚쟁이들만 몰려왔다. 끝내 초량의 자동차 수리공장과 현대상운 소속의 선박 세 척을 처분해서 빚잔치를 벌였다. 회사가 그 지경에 이르자 기술자도 떠나고 직원들도 떠나고 남은 사람은 임원진과 죽으나 사나 현대건설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몇몇 사원들뿐이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고령교를 완공한 보람이 있어 현대건설은 이후 국내 건설사에 주목될 굵직굵직한 공사를 맡으며 상당한 성과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많은 위험부담을 스스로 감수하면서 끝까지 고령교 복구공사를 완공한 성실함을 바탕으로 정부로부터 한층 신뢰를 두텁게 한 현대건설은 정부공사를 발주 받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 것이다. 내무부는 현대건설이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고령교 복구공사를 성실하게 마무리 지어 준 것을 높이 평가하고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에서 특전을 부여했다.
때마침 정부는 1954년도부터 본격적으로 개시한 미국의 전후 복구 사업 계획에 따라 활발한 공사 발주를 전개하고 있는 때였다. 정주영은1955년 5월에 고령교 복구공사를 끝내고 나서 그 해 후반에 가창댐 확장공사를 필두로 낙동강 우곡제 개수 공사 1, 2차분, 강구교 공사, 호포교 공사, 내무부 중기공장 신축공사, 부산항 제4부두 신축공사 등 약 3억 4천여 만 환의 수주 실적을 거두었으며, 이듬해인 1956년에는 옥산교 공사를 비롯해서 가창 댐 확장 2, 3차 공사, 강구교 2, 3, 4차 공사, 안성교 1, 2차 공사, 낙동강 우곡제 3차 공사, 남산 육교 가설공사, 전매청 의주로공장 복구공사 등 약 5억 4천여 만 환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이로서 정주영은 부채를 모두 갚아 신용을 지켰고, 그 고통 속에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일궈냈다. 정직과 성실로 주인의 신뢰를 얻어 쌀가게를 물려받았고, 믿을 만한 청년이라는 신용 하나로 자금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으며, 상품에 있어서의 신뢰, 모든 금융 거래에 있어서의 신뢰, 공급 계약에 있어서의 신뢰, 공기 약속 이행에 있어서의 신뢰, 공사의 질에 있어서의 신뢰, 그 밖의 모든 부문에 걸친 신뢰의 총합으로 오늘날의 ‘현대’를 이룬 것이다. 이 고령교 복구공사는 정주영의 경영방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선례라 하겠다.
정주영은 1991년 3월 서강대 최고경영자과정 특강에서 ‘신용과 진실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흔히 사람들은 자본이 없어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저의 체험에 의하면 자본보다는 신용이 훨씬 중요합니다. 나의 사업계획이, 나의 과거가 주위로부터 신뢰받을 수만 있다면 그 규모의 대소는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