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조들의 낭송교육법
가금현 기자입력 : 2022. 04. 11(월) 14:16

라채운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리채윤의 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CTN]
세상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까
눈 쌓인 깊은 산속 글 읽는 소리가 아닐까
신선이 옥을 차고 구름 끝을 거니는 듯
선녀가 달 아래서 거문고를 타는 듯
집집마다 잠시라도 끊겨서는 안 되는 것
당연히 세상과 더불어 이룩해야 할 일
북쪽산등성이 오막살이 그 누구의 집인가
나무꾼도 돌아가길 잊고 정을 보낸다네.
-다산 정약용 「부득산 북쪽의 글 읽는 소리」(賦得山北讀書聲)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옛날 서당에서는 낭랑하게 목청을 돋워 가락에 맞추어 책을 읽었다.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는 멀리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서당에서 아이들의 책 읽는 낭랑한 소리가 들린다.
다산 정약용은 글 읽는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멋진 시를 써서 남겼다.
세상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까
눈 쌓인 깊은 산속 글 읽는 소리가 아닐까(…)
옛날 서당에서는 낭랑하게 목청을 돋워 가락에 맞추어 책을 읽었다.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는 멀리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여기서 잠시 신사임당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교육환경에 대해서 알아보아야겠다.
유학 특히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 사회는 서당교육이 일반적인 교육이었다.
서당교육을 마친 학동들은 향약(鄕約)과 서원(書院)으로 진학을 했다. 향약과 서원은 조선시대 양반지배층이 유교사상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만든 교육기관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서당은 초등학교 정도가 되고 향약과 서원은 중고등학교라고 보면 된다. 초시(初試)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응시해서 합격한 사람은 지금의 대학격인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서 대과를 준비하며 계속해서 공부할 수가 있었다.
서당교육은 성리학이 전파되기 시작한 고려 시대부터 성행했는데 1123년 여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찾은 서긍(徐兢)은 이방인의 눈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성들의 아들이나 장가들지 않은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모여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조금 더 크면 짝을 지어 절간에 가서 글을 익힌다. 아래로 어린아이들도 마을 선생에게서 배운다. 아 훌륭하구나. (『고려도경』)
서당교육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김홍도의 <서당(書堂)>이란 그림을 보면 서당의 실제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서당에서 학습은 학동들이 교재의 내용을 읽고, 암송하면 훈장이 풀이를 해 준다.
그리고 훈장은 학동들이 암송을 다했는지 시험을 치른다. 훈장 앞에서 배운 글을 암송하는 시험을 ‘강(講)을 해 바친다’고 한다.
만일 암송을 못하면 암송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숙독을 해야 하는데 김홍도의 <서당>에서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학동이 방금 훈장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은 듯 한 손으로 대님을 매고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훈장의 얼굴에는 지긋이 웃음을 참는 모습이 역력하고, 학동들은 까르르 웃고 있다.
그런데 그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예 마음 놓고 킥킥거리며 웃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웃으면서도 눈은 책 위로 가 있는 녀석이 있다.
마음놓고 웃는 녀석들은 시험을 통과한 축이고 반면 책 위로 눈이 가 있는 녀석은 아직 제 차례가 돌아오지 않은 축들이다.
서당에서 글공부하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에는 한없이 정겹고 따듯한 풍경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림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학동은 덩치도 작고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어던 학동은 장가까지 갔는지 갓을 쓰고 있다.
서당에서의 공부는 나이나 학년 구분도 없이 한데 섞여 배웠다는 점이 특색이 있다. 7~8세에서부터 15~16세에 이르는 연령층의 학동들이 같은 방에서 소리 높이 글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 학동은 앞뒤로 흔들며 글을 읽고 훈장은 좌우로 몸을 흔들며 읽는다.
서당의 수업은 요즘의 학교처럼 담임선생 한 사람이 수십 명의 학생을 향해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과 일대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서당에서는 여러 연령층의 학동들이 한 공간에서 공부를 하는 까닭에 글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장유유서(長幼有序)에 대해서,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서,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무려 10살 이상 나이차가 남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진도가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학동들은 함께 어울려서 공부를 하며 인생을 배웠다.
요즘 학생들이 같은 연령의 아이들끼리만 모여서 공부를 하는 바람에 장유유서의 예(禮)를 알지 못하고 획일적인 인간형으로 자라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교육이었다.
서당에서 공부하는 내용은 봄·가을에는 사기(史記)·고문(古文)을 읽히고, 겨울에는 경서(經書)를, 그리고 더운 여름에는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흥취(興趣)를 돋우는 시(詩)와 율(律)을 읽고 짓도록 했다.
서당의 하루 일과를 보면 학습 부담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글을 읽을 때는 하루치 분량을 정해 배우는데 새로운 진도를 나가기 전에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전날 배운 것에 대한 시험을 치른다. '강을 해 바칠 때'는 책을 덮고 이미 배운 부분을 소리 높여 암송한다. '강'을 통과하면 그날의 진도를 나간다. 오전에는 당일 배울 내용을 암송하고, 오후가 되면 배운 내용을 계속 암송하면서 글의 의미를 파악하고 저녁에는 배운 내용을 계속 암송하면서 스승과 제자가 당일 배운 내용에 대해 문답하거나 다음 날 공부를 예습한다.
서당에서는 글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물 뿌리고 청소하는 방법, 부모나 손님을 접대하는 예절. 문중이나 향촌에서 취할 행동 규범을 실습을 통해 가르쳤으며, 산대 놓기를 가르쳐 셈교육도 가르쳤다.
어느 정도 문리가 나고 작문 수준이 오르면 편지 쓰는 법, 축문과 혼서 쓰는 법, 가승(家乘) · 족보 · 호구단자 적는 법 따위의 실질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활쏘기, 말달리기, 무기 다루는 법 등을 가르킨 서당도 있었으나 어느 정도 규모가 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었다. 조선시대에도 교육열이 높았는데 과거시험은 언감생심이라서 서민들은 과거를 보려고 공부하기보다는 교양을 쌓고 예절을 익히는 수단으로 서당 교육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서당뿐만 아니라 마을의 집집마다에서 책 읽는 소리가 아침저녁 끊이지 않았다.
선비는 홀로 방안에서 글을 읽지만 그 소리는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왼다'고 하지 않았던가. 총명한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배우지도 않은 글을 외웠다.
야사에는 정인지, 조광조 등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처녀들이 상사병을 앓는 에피소드를 많이 전하는데 선비들의 청아한 글 읽는 소리는 그만큼 낭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모양이다.
세상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까
눈 쌓인 깊은 산속 글 읽는 소리가 아닐까
신선이 옥을 차고 구름 끝을 거니는 듯
선녀가 달 아래서 거문고를 타는 듯
집집마다 잠시라도 끊겨서는 안 되는 것
당연히 세상과 더불어 이룩해야 할 일
북쪽산등성이 오막살이 그 누구의 집인가
나무꾼도 돌아가길 잊고 정을 보낸다네.
-다산 정약용 「부득산 북쪽의 글 읽는 소리」(賦得山北讀書聲)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옛날 서당에서는 낭랑하게 목청을 돋워 가락에 맞추어 책을 읽었다.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는 멀리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서당에서 아이들의 책 읽는 낭랑한 소리가 들린다.
다산 정약용은 글 읽는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멋진 시를 써서 남겼다.
세상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까
눈 쌓인 깊은 산속 글 읽는 소리가 아닐까(…)
옛날 서당에서는 낭랑하게 목청을 돋워 가락에 맞추어 책을 읽었다.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는 멀리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여기서 잠시 신사임당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교육환경에 대해서 알아보아야겠다.
유학 특히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 사회는 서당교육이 일반적인 교육이었다.
서당교육을 마친 학동들은 향약(鄕約)과 서원(書院)으로 진학을 했다. 향약과 서원은 조선시대 양반지배층이 유교사상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만든 교육기관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서당은 초등학교 정도가 되고 향약과 서원은 중고등학교라고 보면 된다. 초시(初試)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응시해서 합격한 사람은 지금의 대학격인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서 대과를 준비하며 계속해서 공부할 수가 있었다.
서당교육은 성리학이 전파되기 시작한 고려 시대부터 성행했는데 1123년 여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찾은 서긍(徐兢)은 이방인의 눈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성들의 아들이나 장가들지 않은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모여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조금 더 크면 짝을 지어 절간에 가서 글을 익힌다. 아래로 어린아이들도 마을 선생에게서 배운다. 아 훌륭하구나. (『고려도경』)
서당교육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김홍도의 <서당(書堂)>이란 그림을 보면 서당의 실제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서당에서 학습은 학동들이 교재의 내용을 읽고, 암송하면 훈장이 풀이를 해 준다.
그리고 훈장은 학동들이 암송을 다했는지 시험을 치른다. 훈장 앞에서 배운 글을 암송하는 시험을 ‘강(講)을 해 바친다’고 한다.
만일 암송을 못하면 암송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숙독을 해야 하는데 김홍도의 <서당>에서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학동이 방금 훈장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은 듯 한 손으로 대님을 매고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훈장의 얼굴에는 지긋이 웃음을 참는 모습이 역력하고, 학동들은 까르르 웃고 있다.
그런데 그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예 마음 놓고 킥킥거리며 웃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웃으면서도 눈은 책 위로 가 있는 녀석이 있다.
마음놓고 웃는 녀석들은 시험을 통과한 축이고 반면 책 위로 눈이 가 있는 녀석은 아직 제 차례가 돌아오지 않은 축들이다.
서당에서 글공부하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에는 한없이 정겹고 따듯한 풍경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림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학동은 덩치도 작고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어던 학동은 장가까지 갔는지 갓을 쓰고 있다.
서당에서의 공부는 나이나 학년 구분도 없이 한데 섞여 배웠다는 점이 특색이 있다. 7~8세에서부터 15~16세에 이르는 연령층의 학동들이 같은 방에서 소리 높이 글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 학동은 앞뒤로 흔들며 글을 읽고 훈장은 좌우로 몸을 흔들며 읽는다.
서당의 수업은 요즘의 학교처럼 담임선생 한 사람이 수십 명의 학생을 향해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과 일대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서당에서는 여러 연령층의 학동들이 한 공간에서 공부를 하는 까닭에 글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장유유서(長幼有序)에 대해서,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서,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무려 10살 이상 나이차가 남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진도가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학동들은 함께 어울려서 공부를 하며 인생을 배웠다.
요즘 학생들이 같은 연령의 아이들끼리만 모여서 공부를 하는 바람에 장유유서의 예(禮)를 알지 못하고 획일적인 인간형으로 자라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교육이었다.
서당에서 공부하는 내용은 봄·가을에는 사기(史記)·고문(古文)을 읽히고, 겨울에는 경서(經書)를, 그리고 더운 여름에는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흥취(興趣)를 돋우는 시(詩)와 율(律)을 읽고 짓도록 했다.
서당의 하루 일과를 보면 학습 부담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글을 읽을 때는 하루치 분량을 정해 배우는데 새로운 진도를 나가기 전에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전날 배운 것에 대한 시험을 치른다. '강을 해 바칠 때'는 책을 덮고 이미 배운 부분을 소리 높여 암송한다. '강'을 통과하면 그날의 진도를 나간다. 오전에는 당일 배울 내용을 암송하고, 오후가 되면 배운 내용을 계속 암송하면서 글의 의미를 파악하고 저녁에는 배운 내용을 계속 암송하면서 스승과 제자가 당일 배운 내용에 대해 문답하거나 다음 날 공부를 예습한다.
서당에서는 글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물 뿌리고 청소하는 방법, 부모나 손님을 접대하는 예절. 문중이나 향촌에서 취할 행동 규범을 실습을 통해 가르쳤으며, 산대 놓기를 가르쳐 셈교육도 가르쳤다.
어느 정도 문리가 나고 작문 수준이 오르면 편지 쓰는 법, 축문과 혼서 쓰는 법, 가승(家乘) · 족보 · 호구단자 적는 법 따위의 실질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활쏘기, 말달리기, 무기 다루는 법 등을 가르킨 서당도 있었으나 어느 정도 규모가 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었다. 조선시대에도 교육열이 높았는데 과거시험은 언감생심이라서 서민들은 과거를 보려고 공부하기보다는 교양을 쌓고 예절을 익히는 수단으로 서당 교육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서당뿐만 아니라 마을의 집집마다에서 책 읽는 소리가 아침저녁 끊이지 않았다.
선비는 홀로 방안에서 글을 읽지만 그 소리는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왼다'고 하지 않았던가. 총명한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배우지도 않은 글을 외웠다.
야사에는 정인지, 조광조 등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처녀들이 상사병을 앓는 에피소드를 많이 전하는데 선비들의 청아한 글 읽는 소리는 그만큼 낭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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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CTN·교육타임즈·충청탑뉴스·CTN방송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