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일본 러시아 손을 빌려 최재형을 제거하기 위해
- 문영숙 독립운동가취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가금현 기자입력 : 2024. 06. 10(월) 08:54

문영숙 독립운동가취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32회]일본 러시아 손을 빌려 최재형을 제거하기 위해 연해주 군정총독인 스베친에게 거짓 날조문 전달했으나 실패, 최재형 권업회 발기.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였고, 합병선언 다음날인 8월 30일 연해주에서는 13도창의회(十三道義軍)의 지도자 42명을 체포하였다. 러시아당국은 이 가운데 이범윤 등 7명을 이르쿠츠크로 추방하였다. 이들에게 부과된 죄목은 이들이 니콜리스크-우수리스크 군수를 살해할 모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물론 일제가 날조한 거짓 문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최재형은 1910년 12월, 이종호와 함께 연추에 국민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고 자신의 주택을 국민회 본부 사무실로 제공하였다. 당국의 허가를 얻지 못해 비밀로 조직된 국민회의 목적은, 학교설립과 교육의 장려, 인재 등용, 국권회복 등이 목적이었다. 주요간부는 채두성(蔡斗星), 황병길, 오주혁 등이었다.
1911년 초, 일제는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최재형을 러시아의 손을 빌려 처치하기로 했다. 일본은 첩보원들의 도움을 받아 최재형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는데, 최재형이 일본 정권과 비밀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처럼 거짓 정보를 날조하였다. 헤이룽강 연안 군관구 참모장은 최재형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기 위해 연해주 군정총독인 스베친에게 아래와 같이 통보하였다.
‘참모부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노보키예프스크에 거주하는 그 지역의 가옥 소유자이자 얀치혜 마을의 도헌인 최는 굉장히 위험하고 수상한 사람으로서 일본 정부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조선의 천대받는 계층 출신으로서 결국 러시아 경내로 옮겨온 최는 그가 자기 조국에 거주할 때 받았던 모든 능욕에 대해 자신의 동족과 자신의 국가를 상대로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최는 러일전쟁이 종결됨에 따라 도쿄에 가서 반 년쯤 거주하였고, 이때 최는 일본 정권과 비밀회담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최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조선 국민들을 동정하는 척 하면서 새로이 발생한 빨치산 운동의 선두에 서고자 노력하였고 곧 이에 성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빨치산들이 바로 최에 의하여 일본인들에게 넘겨지는 사태로 몰고 갔으며 이제는 조선인들이 최를 다른 눈으로 보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 박환교수의 시베리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에서 발췌-
위 글에서 보는 대로 최재형은 러일전쟁 후 일본에 있던 박영효의 초청으로 약 6개월간 일본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최재형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본은 위 내용대로 연해주 지방 행정부에 최재형을 러시아에서 추방할 것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연해주 지방 행정부는 최재형을 추방하는데 반대하여 최재형을 러시아에 남게 하기로 결정하였다. 우수리스크 철도국 경찰국장 세르바코브는 조선 애국자들의 추방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연해주 군정총독 스베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조선인 최가 아주 믿을만한 진실한 애국자라는 것을 잘 압니다. ..... 일본은 러시아 정권과 조선인들 앞에서 자기네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인물들에게 치욕을 주는 전술로 작년에 일본은 이러한 일들로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또 똑같은 방법으로 최를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은 러시아의 손을 빌려 자기들의 적을 박멸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적 중 하나가 바로 최인데 그는 자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빨치산 운동을 비밀리에 행함으로써 증거를 내보일 수 없게 하였으므로 최는 일본인에게 손꼽히는 적입니다. 일본인들은 그를 매수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수리스크 철도관리국 헌병경찰대장인 쉬체르코바는 연해주 군정순무사 스베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제의 간계를 폭로하고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최재형은 러시아의 의심할 바 없는 충성스러운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포시에트구역 경찰서장 역시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관리들은 물론 모든 주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옹호했다.
최재형은 1주일 동안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추방은 면했지만 연추 도헌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일본은 일본첩자로 추방될 최재형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기선을 블라디보스토크에 대기시켜 놓았다고 한다.
1910년 일제의 한국병합으로 대동공보가 폐간된 이후에 한인들은 그 후속신문의 발간을 위해 노력하였다. 최재형은 대양보 발간이 결정되자 사장직에 취임해서 이종호와 함께 신문발간비용을 분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양보는 인쇄기가 분실되면서 지속적으로 발간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11년, 최재형은 러시아정부의 공식적 허가를 받아 한인의 실업과 교육을 장려할 목적으로 합법적 단체인 권업회를 발기하였다. 1911년 6월 1일, 57명의 대표가 참석한 권업회 발기회에서 최재형은 발기회장으로, 홍범도 장군이 부회장으로, 총무 김립, 서기 조창호, 재무 허태화 등이 간부로 선출되었다. 러시아당국의 공식인가를 받은 권업회 공식 창립대회는 1911년 12월 17일이었다. 창립대회에서 도총재(都總裁) 유인석(柳麟錫)에 이어 김학만, 이범윤과 함께 최재형은 총재로 선출되었다.
참고서적 : 박환 저 <시베리아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 저 <독립운동가 최재형>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였고, 합병선언 다음날인 8월 30일 연해주에서는 13도창의회(十三道義軍)의 지도자 42명을 체포하였다. 러시아당국은 이 가운데 이범윤 등 7명을 이르쿠츠크로 추방하였다. 이들에게 부과된 죄목은 이들이 니콜리스크-우수리스크 군수를 살해할 모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물론 일제가 날조한 거짓 문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최재형은 1910년 12월, 이종호와 함께 연추에 국민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고 자신의 주택을 국민회 본부 사무실로 제공하였다. 당국의 허가를 얻지 못해 비밀로 조직된 국민회의 목적은, 학교설립과 교육의 장려, 인재 등용, 국권회복 등이 목적이었다. 주요간부는 채두성(蔡斗星), 황병길, 오주혁 등이었다.
1911년 초, 일제는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최재형을 러시아의 손을 빌려 처치하기로 했다. 일본은 첩보원들의 도움을 받아 최재형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는데, 최재형이 일본 정권과 비밀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처럼 거짓 정보를 날조하였다. 헤이룽강 연안 군관구 참모장은 최재형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기 위해 연해주 군정총독인 스베친에게 아래와 같이 통보하였다.
‘참모부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노보키예프스크에 거주하는 그 지역의 가옥 소유자이자 얀치혜 마을의 도헌인 최는 굉장히 위험하고 수상한 사람으로서 일본 정부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조선의 천대받는 계층 출신으로서 결국 러시아 경내로 옮겨온 최는 그가 자기 조국에 거주할 때 받았던 모든 능욕에 대해 자신의 동족과 자신의 국가를 상대로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최는 러일전쟁이 종결됨에 따라 도쿄에 가서 반 년쯤 거주하였고, 이때 최는 일본 정권과 비밀회담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최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조선 국민들을 동정하는 척 하면서 새로이 발생한 빨치산 운동의 선두에 서고자 노력하였고 곧 이에 성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빨치산들이 바로 최에 의하여 일본인들에게 넘겨지는 사태로 몰고 갔으며 이제는 조선인들이 최를 다른 눈으로 보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 박환교수의 시베리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에서 발췌-
위 글에서 보는 대로 최재형은 러일전쟁 후 일본에 있던 박영효의 초청으로 약 6개월간 일본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최재형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본은 위 내용대로 연해주 지방 행정부에 최재형을 러시아에서 추방할 것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연해주 지방 행정부는 최재형을 추방하는데 반대하여 최재형을 러시아에 남게 하기로 결정하였다. 우수리스크 철도국 경찰국장 세르바코브는 조선 애국자들의 추방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연해주 군정총독 스베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조선인 최가 아주 믿을만한 진실한 애국자라는 것을 잘 압니다. ..... 일본은 러시아 정권과 조선인들 앞에서 자기네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인물들에게 치욕을 주는 전술로 작년에 일본은 이러한 일들로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또 똑같은 방법으로 최를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은 러시아의 손을 빌려 자기들의 적을 박멸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적 중 하나가 바로 최인데 그는 자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빨치산 운동을 비밀리에 행함으로써 증거를 내보일 수 없게 하였으므로 최는 일본인에게 손꼽히는 적입니다. 일본인들은 그를 매수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수리스크 철도관리국 헌병경찰대장인 쉬체르코바는 연해주 군정순무사 스베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제의 간계를 폭로하고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최재형은 러시아의 의심할 바 없는 충성스러운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포시에트구역 경찰서장 역시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관리들은 물론 모든 주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옹호했다.
최재형은 1주일 동안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추방은 면했지만 연추 도헌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일본은 일본첩자로 추방될 최재형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기선을 블라디보스토크에 대기시켜 놓았다고 한다.
1910년 일제의 한국병합으로 대동공보가 폐간된 이후에 한인들은 그 후속신문의 발간을 위해 노력하였다. 최재형은 대양보 발간이 결정되자 사장직에 취임해서 이종호와 함께 신문발간비용을 분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양보는 인쇄기가 분실되면서 지속적으로 발간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11년, 최재형은 러시아정부의 공식적 허가를 받아 한인의 실업과 교육을 장려할 목적으로 합법적 단체인 권업회를 발기하였다. 1911년 6월 1일, 57명의 대표가 참석한 권업회 발기회에서 최재형은 발기회장으로, 홍범도 장군이 부회장으로, 총무 김립, 서기 조창호, 재무 허태화 등이 간부로 선출되었다. 러시아당국의 공식인가를 받은 권업회 공식 창립대회는 1911년 12월 17일이었다. 창립대회에서 도총재(都總裁) 유인석(柳麟錫)에 이어 김학만, 이범윤과 함께 최재형은 총재로 선출되었다.
참고서적 : 박환 저 <시베리아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 저 <독립운동가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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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CTN·교육타임즈·충청탑뉴스·CTN방송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