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업회 발기위원회 회장으로 중추적 역할
- 러시아 인맥 동원 러시아 극동 총독 곤다치로부터 공식허가 얻어 냄
- 권업회 재러한인사회 대표기구로 한인들 경제문제와 항일 두개의 축
가금현 기자입력 : 2024. 09. 20(금) 10:30
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영숙의 꼭 알아야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1911년 6월 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조창호의 집에서 권업회의 발기회가 개최되었다. 발기회에서는 임시임원을 선출하였는데 최재형이 회장에 선출되었고, 부회장은 홍범도, 총무 김익용, 서기 조창호, 재무 허태화, 의원 김 그리고리, 엄인섭, 유기찬, 오창환, 조장환, 김기룡, 김태봉 등이었다. 권업회 발기회의 주요인물이 거의 함경도파였는데 함경도파의 모임인 함북청년회 회원인 이종호, 김익용, 강택희, 엄인섭 등이 합류하였다. 회장인 최재형과 부회장 홍범도, 총무 김익용도 함경도 출신이었다.
권업회의 발기인들은, 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적극적이던 최재형과,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진 홍범도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권업회는 애국계몽운동 계열과, 의병 계열의 연합한 단체로 볼 수 있다. 권업회는 또 지회권유 위원을 두었는데 노보키예프스크, 니콜라예프스크, 리포, 수청등지에 권유 위원들을 파견하고 이종호, 홍병일 등에게는, 러시아 관청에 교섭하여 러시아 극동 총독 곤닷찌의 공식허가를 얻도록 노력했다.  
한편 한인들에게 매우 나쁜 정책을 폈던 운텐베르게르 총독의 후임으로, 1911년에 부임해 온 신임 극동군관구 군사령관 곤닷찌 총독은 한인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곤닷찌총독은 '이주한인들에게 러시아는 제2의 조국이며, 러시아 땅에 정착한 한인들에게 러시아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향후 한인들에 관한 문제에서 일본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들어 한인에 대한 러시아국적 발급을 적극 지지하였다.
한인에 대한 러시아국적 부여문제는 1911년에 허가되었다. 이후 곤닷찌 총독은 1912년 2월 23일 신한촌을 방문하였는데, 3천여 명의 한인들이 성대한 환영식을 거행하였다. 곤닷찌는 한인들에 대한 연설에서 한인들의 도덕적이며 온화한 품성을 가졌다 칭찬하고, 사회적·교육적·문화적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곤닷찌는 권업회 인가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방문한 이상설·이종호·정재관·한형권 등 권업회 대표단에게 권업회 명예회원으로 입회할 것을 약속했다.
권업회 발기회는 1911년 7월 3일, 블라디보스토크의 청년들이 만든 청년근업회와 합쳐 그 세를 확장시켰다. 곧바로 임시 임원에서 정식 임원개선을 했는데 회장에 최재형, 총무 김익용, 서기 이근용, 김기룡 재무 김와실리, 의원 김규섭, 김형권, 한형권, 이형욱, 김치보, 조창호, 신문부원 이종호, 유진률 등이었다. 주요간부가 된 회장 최재형, 의원 김규섭, 신문부 유진률 등이 청년근업회에서 간행하는 신문 『대양보』의 주요 인물이었다. 『대양보』는 1911년 6월 18일 러시아당국으로부터, 유진률을 발행인, 신채호를 주필로 간행을 인가받았으나 재정난에 허덕이는 것을 최재형이 돈을 내어 발행 할 수 있었다. 『대양보』 사장이었던 최재형이 권업회 발기 때부터 줄곧 회장에 취임한 것을 보면 최재형의 노력으로 이들 두 단체가 연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권업회는 발기회의를 마친 후 청년근업회의 재정과 근업회에서 발행하던 『대양보』도 인수하였다.
이처럼 권업회는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하여 블라디보스토크 지방 재판소로부터 단체의 설립허가를 받고, 1911년 10월 24일에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인 농민인 홍 빅토르 세르그페비치, 김 야코브 이바노비치, 홍 바벨 파블로비치, 안 라만 이바노비치, 김 인노겐치 이바노비치등 5명의 명의로 연해주 군지사에게 권업회의 공식허가를 요청하였다. 러시아 당국에서는 한인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911년 12월 19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동포들은 재러동포들의 권익과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내 한민학교에서 권업회의 공식적인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창립총회에서 임원을 선거했는데 의장에 이상설, 부의장에 이종호, 총무 김익용, 한형권, 재무 김기룡, 서기 이민복, 의원 이범석, 홍병환, 김만송 등이 선출되었다. 이 외의 특별임원에는 최재형, 류인석과 이범윤 김학만, 최봉준 등이 선출되었는데 이들은 권업회를 발기한 중심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는 러시아에서 당국의 공식인가를 받고 조직한 최초의 한인단체였는데 최재형이 그 중심에 있었다.
한편 권업회는 연해주의 러시아 인 주요 인사들을 명예회원으로 가담시켰는데 연흑룡주 총독 곤닷찌를 위시하여, 연해주 군지사 마나킨 장군, 블라디보스토크 연구기관 교수인 포드스타빈, 러시아 정교 주교감독국의 기관비서 포라노브스키, 블라디보스토크 자치기관 회원이며 퇴역 참모부 준대위인 듀코프 등이다. 이들을 끌어들인 것은 최재형의 탄탄한 러시아 인맥이 밀접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서적 : 박환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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