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대학에서 필리핀 긴급구호 성금 모금행사가 있었다.
이는 지난 11월 초 초대형 태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필리핀 국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 날 인천에서는 우리 국군 정예요원 600여명으로 구성된 필리핀 합동지원단 창설식이 거행되었다.

필리핀은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로 우리나라에 도착한 유엔군으로 총 7,000여명이 참전하여 450여명이 희생되는 등 우리나라를 지키는데 큰 공을 세운 고마운 나라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큰 도움을 준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당시 희생되신 분들을 기억하는 일 또한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땅에서도 남쪽 끝에 위치한 '부산'은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나에겐 머나먼 남쪽 땅에 불과했다. 막연히 매년 여름이면 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해운대와 물류·첨단산업의 거점으로 번화한 모습으로만 알고 있었다.

몇 해 전 국립대전현충원 직원들과 함께 처음 부산을 찾은 나는 국군이 아닌 세계에서 유일한 UN군 6·25전쟁 참전 전사자 11개국의 2,300여명이 잠들어 계신 UN기념공원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나라에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부산이란 땅에 멀고도 먼 타국의 우리와 생김새가 다른 이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잠들어 계신다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숙연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이게 했다.

60여년 전 6·25전쟁 당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도 채 안되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는 등 자칫하면 지구상에 영원히 없어질 뻔 했던 대한민국은 우리의 국군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21개국 UN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으로 지켜낸 것이다.

6월 6일은 우리의 현충일로 우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땅에 잠들어 계신 UN군 전사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되새겨 볼 기념일은 없는 것일까?

11월 11일 국민 대다수가 초코막대과자를 선물하던 그 날 11시 부산과 미국, 영연방 4개국 등 8개국에서는 한국에 있는 부산을 바라보며 사이렌과 함께 묵념을 하고 있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기억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각국의 참전 병사를 기억하는 순간인 것이다.

'Turn Toward Busan'(부산을 향하여)으로 명명된 이 추모행사는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캐나다의 빈스커트니씨가 부산 현지 시간에 맞춰 부산 UN기념공원을 향해 동시에 묵념을 하고 추모행사를 하자고 2007년에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60년이나 지났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인데도 2012년 국민안보의식 여론조사 결과 6․25전쟁 발발연도를 모르는 청소년이 57%나 될 정도로 우리의 안보의식은 바닥이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찾아와 자유를 지키다 희생된 UN군 전사자와 국내 국립묘지에 안장된 수많은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 땅에서 6·25전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 국민이 나라사랑의 정신을 새롭게 다지고 강대한 대한민국으로 도약하려는 노력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도리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 마케팅 전략에 현혹되기 보다는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 땅의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하는 성숙한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