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CTN]정민준 기자ㅣ“도시는 축제로 말한다.” 대전시는 그렇게 믿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대전 0시 축제’를 둘러싼 현실은 이 믿음에 깊은 회의를 던지고 있다. 수치로만 보면 찬란하다. 200만 관람객, 3,800억 원 경제효과, ‘3無 축제’ 3년 연속 도전. 그러나 이 화려한 외피 속에 감춰진 내부는 실망과 허탈, 그리고 분노다. 그 중심에 바로 대전문화재단이 있다.

재단은 축제 붐업의 핵심 콘텐츠라며 지난 2일 개장한 ‘패밀리테마파크’를 성대히 띄웠다. 그러나 개장과 동시에 쏟아진 비판은 단순한 악플이 아니다. 축제의 본질을 배반한, 그리고 시민의 기대를 짓밟은 기획 실패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 공간’이라는 설명과 달리, 실체는 완구기업 협찬으로 치장한 유아용 놀이터에 불과하다.

특히 완구기업 ‘영실업’과 손잡고 조성한 캐릭터랜드는 콩순이·또봇·시크릿쥬쥬로 도배된 기업 마케팅 무대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단이 공공기관인가, 특정 기업의 브랜딩 대행사인가? 세금으로 진행되는 공공행사에 민간 기업 콘텐츠가 이토록 우선시되는 것은 명백한 정체성 훼손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축제 기획 전체가 특정 연령(유아·아동)에 편중되며, 대전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문화·예술적 서사는 철저히 실종됐다. 전시성 부스, 매년 반복되는 공예체험, 얕은 수준의 과학 부스까지. 시민들은 “이게 축제냐, 키즈카페냐”는 냉소를 던진다. 지역성과 창의성은 사라지고,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관객몰이식 전시행정만 남았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민폐를 고스란히 대전시가 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세계적인 문화콘텐츠 도시로 도약”을 공언하며 축제 전반을 총력 지원하고 있다. 교통통제, 안전관리, 폭염 대비, 홍보, 예산 등 시의 행정력과 자원은 총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뒷받침 위에 서 있는 문화재단은, 과연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대전시는 도시 전체를 축제 무대로 삼아 지역경제와 도시브랜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실제로 교통약자 배려, 시민참여 확대, 지역문화예술인의 대거 참여 등은 매우 고무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이 중심 콘텐츠를 쥔 재단이 이토록 무책임하고 상업적이라면, 축제는 결국 ‘도시의 명예를 깎아먹는 이벤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제 대전시는 냉정한 평가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축제는 시민의 것이며, 도시 정체성과 문화정책의 축소판이다. 공공성을 포기한 채 기업 협찬에 기대고, 콘텐츠 깊이 없이 겉핥기식 행사를 반복하는 문화재단의 행태는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된다. 단지 “축제 잘됐다”는 보도자료용 수치 몇 줄로는 시민의 신뢰를 살 수 없다.

대전문화재단은 지금이라도 자성하라. ‘패밀리테마파크’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이 민망한 행사는 곧 대전시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화상임을 자각해야 한다. 문화는 흥정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축제는 숫자놀음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자부심이 녹아든 공공의 경험이어야 한다.

대전시도 더 이상 뒷짐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보여주기식 수치와 형식적 보고가 아닌, 시민 눈높이에서 철저한 검증과 감시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재단 운영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과 책임자 문책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대전 0시 축제는 세계적인 문화축제가 아니라, 세금 낭비와 정체성 상실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이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정민준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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