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N 문학)영유아기의 환경


- 김요미/ 수필가
정민준 기자입력 : 2021. 09. 26(일) 16:56
▲ 김요미/ 수필가
[CTN/문학] 아주 어렸을 적의 우리 초가집을 떠올리면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종달새 지저귀는 넓은 들과 뒷동산이 있었고 집 앞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가 있어 물놀이의 무대가 되어 주는 배산임수 천혜의 놀이터가 생각난다. 지금 난 칠순을 바라보는 67세 할머니이지만 가끔 영유아기 때의 일이 기억이 난다.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은 지금, 소중한 기억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두 살 때 정도의 기억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머니의 젖을 먹을 형편이 안 되어 미음 같은 맘죽을 둥그런 노란색 고무줄을 빨대로 삼아 먹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께서 화를 내시며 "시장에 갔으면 고무줄을 사 와야지, 왜 안 사 오는 게냐" 하면서 호박 줄기를 따서 껍질을 벗겨 그걸로 빨아먹게 했던 모습이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빨대 같은 게 없던 시대였던 것 같다.

할머니 방이었던 작은 방은 방 문턱 넘어 툇마루가 없었기 때문에 상체를 밖으로 조금만 더 내밀면 마당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험하게 놀다가 마치 ‘깊은 물 속에 빠지는 순간’처럼 놀라면서 떨어졌던 기억도 나고, 그래서 많이 혼나고는 했지만 그러고도 놀다가 또 떨어지기도 했다.

어려서 몇 살 때 기억인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옛 기억들이 잊히지 않고 떠올라서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도 곧 내 머리의 기억공간이 노후화돼서 고장 날 때를 대비도 할 겸, 추억을 되새기려 한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는 할머니 방 윗목에 베틀을 놓고 광목(목화로 만든 천), 삼베, 모시, 베를 짜서 분홍색으로 물들여 치마 만들고 적삼이라고 했던 상의 만들어 입혀 주셨던 기억이 난다. 단추도 제천으로 고를 맺어 달아 주셨다. 특산물 지역이 아닌 데도 일상생활로 보기 드문 일로써 아버지께서 모시 나무와 삼배 나무인 삼나무를 직접 밭에서 재료를 배어 지게에 지어 마당 한쪽에 부어 놓고 잎사귀는 다 제거하고 줄기만 골라내어 베(천)를 짜는 토대를 만들어 주셨다.

준비작업은 마당에서 지푸라기로 가늘게 새끼를 꼬아 아버지께서 손수 만든 멍석을 마당에다 펴 놓으시고 그 위에서 껍질을 벗겨 가늘게 분리해서 그것을 실처럼 만들어 한쪽 발을 세우고 정강이에 침 발라서 이어서 실을 만들어 둥근 체에다 동그랗게 모인 실을 물레에다 빙글빙글 손잡이를 돌려 가며 감았다. 가늘게 만든 실을 베틀에서는 작은 실 꾸러미를 나무로 배처럼 만든 북통에 넣어서 들실, 날실, 왔다 갔다 하며 빗살 같은 바디라고하는 것으로 탁탁 밀어 누르며 베를 짜 나아갔다.

장난감이 없던 시절 어른들의 생활 모습을 보는 것으로 지루함 없이 흥미로 호기심으로 느끼며 성장했고 마당에서 하시는 광경을 할머니 방 문턱에 손 집고 앉아 구경하기도 했다. 영유아기에 겪었단 주변 모든 경험이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할머니와 부모님이 하신 생활 모습은 내 머릿속에 흡수되어 아직까지도 살아서 움직이는 듯 현실감이 있다.

무엇보다 손재주 좋았던 우리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께서는 벼를 담고 쌀 담는 가마니를 만들기 위해 낮에 볏짚을 곱게 다듬어 두었다가 밤이면 큰 방에서 직접 가마니 틀을 사용하여 만들기도 하고 옹탱이, 망태기, 소쿠리와 같은 온갖 소품을 만들어 가을에 곡식 같은 것을 담아 놓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가 작은 소품들을 만들 때 하나둘씩 볏짚을 집어준다고 거들다가 예뻐서 가지고 놀다가 괜스레 방해만 되는 일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반짇고리는 풀뿌리로 더 곱게 만들어 우리 남매가 다 커서까지도 오래 사용하여 반질반질 윤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생활용품들도 직접 다 만들어 쓰셨는데 빗자루도 홀태라는 데에 벼를 훑어내고 부드러운 부분으로 빗자루 메어서 방 빗자루로 쓰시고 수수 농사지어 그 수수 열매 다 빼낸 거친것으로도 빗자루 만들어 토방이나 부엌에서 사용하고 긴 대나무로 엮은 빗자루는 마당을 쓸었다. 직접 아버지께서 만든 도구라서 그런지 언제나 아침 일찍부터 방부터 문 활짝 열어놓고 집 전체를 청소해서 언제나 정리정돈 잘돼 있고 깨끗하였다. 아버지께서 집에서 사용할 도구들을 만드실 때마다 어머니는 예쁘고 곱게 만들었다며 아버지 하시는 일에 흐뭇해하시고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솜씨도 좋으시고, 밤이면 등잔 호롱불에 책을 바짝 대고 읽어 주시고 옛날이야기도 들려주시는 자상 하신 분으로 농경사회에서 농부로서 부지런하시어 놀지 않으시고 유실수 심는 일과 가축도 다양하게 기르시는 일이 취미 같았다. 농촌에서 있어야 할 가축은 소, 돼지, 염소, 강아지, 토끼까지 여러 마리는 아니지만 몇 마리씩 골고루 키우며 새끼 낳아 번성시키어 육식으로 사용하고 닭장은 크게 만들어 알 낳아 병아리 부화시키고 항상 달걀을 식용으로 사용하고 뭐든 자급자족하였다.

가축들을 빚으로 쓰다듬어 주시고 여물 썰어 소 죽 끓여 뜨끈뜨끈하게 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생활 모습은 우리들의 시청각 교육인 것이었다. 우리도 성장하면서 모든 가축 옆에서 먹는 모습 지켜보며 토끼에게 풀을 먹여주고 강아지 젖 먹는 모습 한없이 지켜보고 어미 닭을 삐악삐악 따라다니는 노란 병아리 지켜보고 귀여워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밥 먹는 것도 잊고 밥 먹으라 성화 대시던 일 꾸중 듣던 일들도 잊을 수가 없다.

귀엽고 예뻐서 항상 먹이 먹는 것 지켜보고 사랑 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돼지 잡고 어느 날 냄새 나서 토기장 가보면 토끼가 없어지고 또 어미 닭이 없어지고 밥상에 집에서 기른 가축 고기가 올라오면 나는 밥그릇 들고 여름엔 장독대로 추울 때는 할머니 방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소는 키워서 쟁기로 논 밭 갈고 송아지 낳으면 팔아서 목돈 마련하느라 이런 일이 없어 지금도 소고기만 좋아하고 그 외 고기는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의 부모님들께서 생활하시는 모습을 흉내라도 내듯이 고향 시골에 전원주택 짓고, 앞 들에 갖가지 유실수도 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내려가 자연과 물아일체 이루고 아들, 딸 가족과 친구들 놀러 오는 곳이 되었다. 유기농 재배로 모든 농산물은 자급자족하고 쌀농사는 많이 생산해서 지인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기부도 하고 있다.

나는 두뇌 계발의 아주 중요한 영유아기 때 주입식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시골의 자연환경과 친구 되어 침묵의 소통을 하며 부모님들의 생활 환경으로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교육이 된 것 같아 감사드린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정민준 기자 입니다.
정민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CTN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다양한 채널에서 CTN을 만나보세요!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