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참 빠르다. 어제처럼 맞이한 새해였는데, 벌써 2012년이 세월의 숲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며 2013년을 맞이하란다. 켜켜이 쌓이는 연륜만 남겨놓고, 세월의 아픔과 기쁨도 남겨두고 이제 그만 2012년을 보내란다.

다사다난하다는 말을 사람들의 가슴에 남겨놓고 그렇게 간다.

그래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고 2012년을 보내려한다. 그리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주고, 누려야 할 시간도 잊지 않고 누리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패트리샤 폴라코의 「할머니의 조각보」라는 동화가 있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온 안나 증조할머니는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입고 있던 옷과 머리에 쓰는 ‘바부슈카’가 변하지 않았다.

안나 증조할머니가 자라자 증조할머니의 어머니가 새 옷을 지어주고, 가족들이 입던 옷들을 모아서 고향 생각이 나도록 옷들의 무늬들을 오려서 조각보를 만들었다.

안나 할머니가 처녀가 되어서 결혼을 하자 그것은 신랑 신부를 씌워주는 천막이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 칼이 태어나자 그 조각보는 칼 아기를 감싸는 첫 이불이 되었다.

칼 할머니와 조지 할아버지의 결혼식에서 조각보는 천막이 되었고, 주인공의 어머니 메리 엘렌이 태어나자, 그 조각보는 아기의 첫 이불이 되었다.

어머니는 안나 증조할머니를 ‘귀부인 할머니’라 부르며 아프실 때가 많아지자 그 조각보로 무릎을 따뜻하게 덮어 드렸다.

안나 증조할머니의 아흔여덟 번째 생신 날, 러시아에서 드시던 쿨리치 케이크를 먹었다. 안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아가씨가 되었다. 주인공의 어머니 엘렌도 조각보 아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으로 유태인이 아닌 사람들이 결혼식에 왔다. 그리고 나, 패트리샤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그 조각보는 이불이 되었다. 돌을 맞던 날 식탁보도 그 조각보였다.

그리고 그 조각보는 패트리샤의 놀이터가 되었다. 또한 패트리샤가 결혼하던 날도 그 조각보는 천막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딸 트레이시가 태어나던 날도 그 조각보는 첫 이불이 되었다. 그리고 트레이시가 집을 떠나는 날 그 조각보는 트레이시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할머니의 조각보」는 러시아의 풍습과 유태인들의 풍습을 보여주며 요란하지 않은 잔잔함 감동을 준다. 요란하지 않다는 것은 여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한 가정의 여인들의 세월을 표현해 준 조각보는 나로 하여금 생각에 생각을 이어주었다.

증조할아버지인 사샤는 손수건에 금화와 말린 꽃, 돌소금을 싸서 증조할머니에게 주었다. 금은 부자를, 꽃은 사랑을, 소금은 향기로운 삶을 나타내는 물건이란다. 그리고 안나 할머니는 칼 할머니에게 금과 꽃, 소금, 빵을 선물로 주었다. 빵은 조금이라도 배고픔을 겪지 말라는 뜻이란다. 칼 할머니는 금화와 빵 소금으로 꾸민 꽃다발을 들었다.

패트리샤의 어머니도 금과 빵 소금으로 꾸민 꽃다발을 들었다. 패트리샤도 어머니와 같은 꽃다발을 들었지만 웃으며 살라고 사람들이 포도주를 그 꽃다발에 뿌려준다.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하지만 변하지 않고 들은 것은 금과 꽃, 소금이다. 그것에 담긴 의미도 아름답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으스스 몸이 떨려왔다. 살아가고 있음만 보여주었다. 세월을 조금 더 살았다는 것 외에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없다.

세월이 이리 허무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또 마음 한 자락에서는 스스로를 위안한다.

패트리샤는 어려웠던 정착 기간 동안의 위안이 되었던 조각보가 있다. 그것에 여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세월은 조각조각이 이어져 아름다운 추억의 더께가 되고 있다.

그래, 내 삶도 이렇게 아름답게 이어져 가고 있으리라 위안하며 2012년을 보낸다. 2013년에는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더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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