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내소사를 다녀와서
시민기자 최창배
임종복 기자입력 : 2012. 12. 05(수) 14:35
최창배 시민기자
길게 드리워진 능수버들이 왔다가는 쏜살같이 지나가고, 곧게 뻗은 느티나무가 듬직하게 왔다가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들녘을 지날 즈음엔 황량감마저 감돈다.
초록빛이 엊그제고, 황금들판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파릇파릇한 보리싹이 또다른 잉태를 꿈꾼다.
그렇게 창밖은 시시때때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연히도 휴게소에서 예전에 근무했던 곳에서, 당시 낙향하여 일자리를 얻어 새로운 생을 엮어가고 있는 ㅊ사장을 만났다. 인연이 정말 묘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 시간에 이곳에서 몇 번씩이나 만날 줄이야.
그러나, 서로의 갈 길이 달라 인사 몇 마디만 건네고는 헤어졌지만,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순간이었다.
객지에서 고생고생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빚더미만 지고, 그래도 고향이 좋은지라 열심히만 하면, 먹고는 살겠지 하고 악착같이 산 결과, 이제는 정착하여 제법 집도 짓고 애들 학교도 잘 지내고 금슬도 좋아, 이웃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오늘의 좋은 징조일까?
마을 어귀에는, 타작이 끝난 논 귀퉁이에 지푸라기가 듬성듬성 쌓여있고, 굴뚝에서는 잿빛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포근하여 겨울을 맞는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곳곳에서 김장을 하느라 분주했다.
갖은 양념으로 소를 넣고 싸먹는 모습들이 차창 밖으로, 유난히도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사랑을 버무려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잠시 후엔, 배추꼬리로 끓인 된장국과 겉절이로 점심을 맛있게 먹겠지...
아련히 옛 생각이 떠오른다.
뒷밭에서 뽑은 배추와 무를 구덩이에 저장하기 위하여 흙을 깊게 파고, 볏짚을 깐 후, 차곡차곡 무와 배추를 넣고 막대기를 살짝 걸치고, 그 위에 가마니와 짚으로 덮고, 흙으로 두툼히 덮으면 완성되던, 그래서 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맛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지금 생각해도 삶의 여유와 지혜가 있는 그리운 시절이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여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호랑가시나무, 먹감나무, 사랑나무, 꽝꽝나무, 나도밤나무, 자작나무, 특유의 맑은 향을 간직한 전나무와 일주문, 연지, 보종각, 부도들의 사연과 더불어, 성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았다.
특히, 700년된 당산나무인 느티나무는, 숱한 영욕의 시련을 맛보았으니, 이 얼마나 장엄한가.
오랜 역사 속에 스며있는 노력의 흔적과 해탈에의 경지에 이르고, 수많은 고난과 고뇌와 고독과 참회로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이룰 수 있었던, 선인들의 수행과 고해(苦海)를 잠시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 많은 아픔들을 감내하면서, 후손들의 평화와 안녕을 추구했을 것이다.
잠시나마, 쳇바퀴 도는 일상을 일탈하여, 선인들의 숨소리와 목소리와 신비함을 접하여 보는 이 순간은 정말로 감회가 새로웠다.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안보이고, 안 들리고, 등골이 뻐근하고, 노폐물에 쌓여있던 모든 것 들에 지탱하지 못해, 주저앉고 싶을 때가 너무 많고, 늘 아픔을 달고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을 잊고 싶었던 참이었다.
「아프다는 것은, 곧 청춘이다.」라고 하듯, 아픔이 나약함과 절망과 죽음에 이르기 보다는 치유의 수단으로 승화시켜, 현실을 유익하게 낙관적으로 유도하여 깨달아야겠다는 마음이 도출됐다.
「인간의 발명품은 고독이지만, 그 해독제는 웃음과 활기」라고 아니 하였던가.
무용(無用)은 유용(有用)을 창조하듯, 엄살과 통증과 수직과 팽팽함을 접고, 생명과 수평과 축복과 밝음을 위해, 한 번쯤 크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되뇌어본다.
산사 옆 구릉으로 살랑살랑 불어와, 귓가에 속삭이듯 따스하게 스며드는 늦은 가을바람 내음처럼,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아픔을 극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유지하는데, 나 자신에 대한 풍부한 열정을 간직하자고 자위해보며,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그것이, 나 자신에 대한 치유이자 환희라고 가다듬으며, 11월의 막바지에 다녀온 이번 일정은 생의 조그만 바로미터가 되었으며, 보람 있고 뜻 깊은 계기가 되었다고 다짐해본다.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능가산의 사찰(寺刹)
-시민기자 최창배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들녘을 지날 즈음엔 황량감마저 감돈다.
초록빛이 엊그제고, 황금들판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파릇파릇한 보리싹이 또다른 잉태를 꿈꾼다.
그렇게 창밖은 시시때때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연히도 휴게소에서 예전에 근무했던 곳에서, 당시 낙향하여 일자리를 얻어 새로운 생을 엮어가고 있는 ㅊ사장을 만났다. 인연이 정말 묘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 시간에 이곳에서 몇 번씩이나 만날 줄이야.
그러나, 서로의 갈 길이 달라 인사 몇 마디만 건네고는 헤어졌지만,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순간이었다.
객지에서 고생고생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빚더미만 지고, 그래도 고향이 좋은지라 열심히만 하면, 먹고는 살겠지 하고 악착같이 산 결과, 이제는 정착하여 제법 집도 짓고 애들 학교도 잘 지내고 금슬도 좋아, 이웃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오늘의 좋은 징조일까?
마을 어귀에는, 타작이 끝난 논 귀퉁이에 지푸라기가 듬성듬성 쌓여있고, 굴뚝에서는 잿빛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포근하여 겨울을 맞는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곳곳에서 김장을 하느라 분주했다.
갖은 양념으로 소를 넣고 싸먹는 모습들이 차창 밖으로, 유난히도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사랑을 버무려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잠시 후엔, 배추꼬리로 끓인 된장국과 겉절이로 점심을 맛있게 먹겠지...
아련히 옛 생각이 떠오른다.
뒷밭에서 뽑은 배추와 무를 구덩이에 저장하기 위하여 흙을 깊게 파고, 볏짚을 깐 후, 차곡차곡 무와 배추를 넣고 막대기를 살짝 걸치고, 그 위에 가마니와 짚으로 덮고, 흙으로 두툼히 덮으면 완성되던, 그래서 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맛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지금 생각해도 삶의 여유와 지혜가 있는 그리운 시절이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여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호랑가시나무, 먹감나무, 사랑나무, 꽝꽝나무, 나도밤나무, 자작나무, 특유의 맑은 향을 간직한 전나무와 일주문, 연지, 보종각, 부도들의 사연과 더불어, 성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았다.
특히, 700년된 당산나무인 느티나무는, 숱한 영욕의 시련을 맛보았으니, 이 얼마나 장엄한가.
오랜 역사 속에 스며있는 노력의 흔적과 해탈에의 경지에 이르고, 수많은 고난과 고뇌와 고독과 참회로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이룰 수 있었던, 선인들의 수행과 고해(苦海)를 잠시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 많은 아픔들을 감내하면서, 후손들의 평화와 안녕을 추구했을 것이다.
잠시나마, 쳇바퀴 도는 일상을 일탈하여, 선인들의 숨소리와 목소리와 신비함을 접하여 보는 이 순간은 정말로 감회가 새로웠다.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안보이고, 안 들리고, 등골이 뻐근하고, 노폐물에 쌓여있던 모든 것 들에 지탱하지 못해, 주저앉고 싶을 때가 너무 많고, 늘 아픔을 달고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을 잊고 싶었던 참이었다.
「아프다는 것은, 곧 청춘이다.」라고 하듯, 아픔이 나약함과 절망과 죽음에 이르기 보다는 치유의 수단으로 승화시켜, 현실을 유익하게 낙관적으로 유도하여 깨달아야겠다는 마음이 도출됐다.
「인간의 발명품은 고독이지만, 그 해독제는 웃음과 활기」라고 아니 하였던가.
무용(無用)은 유용(有用)을 창조하듯, 엄살과 통증과 수직과 팽팽함을 접고, 생명과 수평과 축복과 밝음을 위해, 한 번쯤 크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되뇌어본다.
산사 옆 구릉으로 살랑살랑 불어와, 귓가에 속삭이듯 따스하게 스며드는 늦은 가을바람 내음처럼,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아픔을 극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유지하는데, 나 자신에 대한 풍부한 열정을 간직하자고 자위해보며,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그것이, 나 자신에 대한 치유이자 환희라고 가다듬으며, 11월의 막바지에 다녀온 이번 일정은 생의 조그만 바로미터가 되었으며, 보람 있고 뜻 깊은 계기가 되었다고 다짐해본다.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능가산의 사찰(寺刹)
-시민기자 최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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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