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가 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 가을낭만을 단순히 지켜보고 지낸다는 것 보다 더 허망한 것이 없다.

잠결에 들은 가을비 내리는 소리가 제법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어인일일까? 인근에 있는 오서산 억새소리가 바람과 함께 어우러지면 장관이 아닐 수 없듯 요동치는 가을이 온몸에 부대껴 온다.

멀리서 짙은 안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의 뿌연 하늘은 짙은 구름 속에 가리워진 잿빛 하늘은 침묵하듯 고요하다. 아니 고요하다 못해 고독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생기 없는 바람만이 가끔 얼굴에 와 닿는다.

청라저수지 안개의 촉촉함에 이 몸이 홀렸는지, 뒷산에 부는 바람소리에 놀라 바라보면 어느 새 들려오는 아스라한 목소리...

무엇이 나를 가슴 저미게 하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를 반복하는 일상에서 여름내 고생한 덕분으로 예쁜 꽃을 만들었건만, 이젠 다시 돌려줄 때를 생각하니, 들꽃정원이 꽤 어수선하다.

이제 산초열매 익어가는 가을이 절정의 문턱에서, 조금이라도 버석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움찔 한다.

내 유년의 추억과 사랑과 선율이 다시 살아날 날을 기대하며 넉넉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안개가 짙게 낀 날은 청명하여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여 알곡을 말리기에는 최상의 날이리니, 빗질처럼 엎치락 뒷치락을 거듭하는 벼는, 이제 예쁜 쌀로 탄생하여 우리네 침샘을 자극할 것이다.

매년 그랬듯이 하늘만 알고 있는 농삿꾼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비와 눈과 안개와 태풍 등을 감내하며 일 년 동안의 고된 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가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그래도 속 깊은 당신은 때론 한숨으로, 후회로, 환희로, 감동으로 이어지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일상을 그리워 합니다.

외양간에 매어 있는 황소가 긴 울음을 토할 때, 터럭이 잔뜩 묻어 있는 바지를 털 때, 벼 멍석에 붙어 있는 나락을 털 때, 홍시가 매달린 감나무에서 잠자리채로 살짝 따서 맛보는 홍시의 애석함, 빠알간 고추가 자태를 뽐낼 때, 우리의 부모님은 헛헛한 마른기침과 함께, 뒷짐 지고 돌아서는 뒷모습의 쓸쓸함이란, 몹시도 그리운 당신의 모습입니다.

현실이 현실이 아닌 듯한 한숨을 달고 다니면서, 깊은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속 좁은 마음이 못내 아쉽기만 한데, 더더욱 아쉬운 것은 고향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짧은 인간의 속성이 아닐까 한다.

가을산에 오롯이 담긴 감성들 마저 흔드는 짧은 가을의 정취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직도 정서가 메마른 이유라고 말하지만, 삶에 찌는 일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저 멀리 안개속으로 사라진 허구와 진실사이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할까.

수많은 군상들이 진실을 외면한 채,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는 본래의 갈등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닐까.

이제 당신의 그림자가 배어 있는 먼 옛날의 고향을 찾아 다시한번 고개를 떨구고, 차마 하지 못한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중얼거려 본다.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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