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을 소고

아동문학가 김진경

임종복 기자입력 : 2012. 11. 14(수)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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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아동문학가

짧아진 가을이 야속하기만 하다. 더구나 여름비와 같은 비가 내리고 여름의 태풍 같은 바람이 불어쳐오니 더 속상했다.

사계절의 구분이 분명했던 우리나라의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뀌려는지 어쩌면 과도기 상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멀지않은 시간에 사계절의 개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아직까지 우리 아이들이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쩌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국어사전에서나 찾아볼 말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국어사전에서 ‘소고’는 ‘가볍고 단편적인 고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절주절 떠드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의 가을을 살아오면서 가는 가을이 이렇게 속상하기도 드물다. 풍성한 추수가 다 마치면 긴 겨울을 맞이해야하고 그러면 새 봄이 온다. 그에 맞추어서 마지막 세월 앞에 훌쩍 다가서기 때문이다.

불혹의 나이를 다 보내고 지천명의 나이 때를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가고 있는 세월인데.

몇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흰머리는 새치의 기준을 이미 벗어난 상태였다. 친정 엄마가 일찍 흰머리가 생겼다 했다.

어느 밤인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 나이의 한계를 정해서 생각해 보았다. 다 부질없는 생각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중간에서 이미 훌쩍 넘어서 있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하듯이 생의 나그네 연수가 살아온 세월보다 짧게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가 하는 생각에서 아무것도 없음을 느끼며 그 밤이 길게만 느껴졌다.
이 세상이 모자이크라면 어느 자리에서 내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삶의 자리를 만들어 갔는지 생각해 보았다.

난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고집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몸부림이다.

분주하게 살아온 시간이 많았다. 뒤돌아보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 자리에서 협력해서 모든 것이 선하게 되어졌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 삶의 자리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무심하게 눈을 들어서 어디를 보아도 가을빛은 완연하다. 그 깊고 파랗던 하늘,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충분하게 온 세상을 물들이던 나뭇잎들. 그러면서 가을에는 그냥 있어도 행복한 계절, 창 넓은 찻집에서 좋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은 계절, 그냥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찾아가도 흉잡히지 않을 계절이다.

가을에는 모든 것이 용서되는 풍성한 계절이다. 그러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던 계절이었다. 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감성에 가장 기본이다. 아니 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마음이 여유롭다는 뜻이다.

이때는 실컷 울고 싶어 울어도 그 울음이 슬프지 않은 때이다. 그래서 속울음으로 울어도 마음이 개운해진다.

그리고 가을은 희망의 계절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 바람 너머로 따뜻한 바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떠랴 희망의 작은 불씨가 살아서 활활 타오를 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종잡기 어려운 마음의 갈등도 이 가을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다 가을이 가지 않았다. 계절의 독특한 변덕에도 굴하지 않고 가을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더 누리려한다.

-김진경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