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배고프다’라는 것을 잘 몰랐다. 아버지가 교직에 계셨기에 엄마는 한 달 외상으로 살고, 다음 달 월급 받아서 갚고 또 외상 하며 사는 이 생활을 반복했다. 아마도 봉급 생활인의 애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남편은 배가 너무 고파서 한 번에 라면 여러 봉을 삶아서 먹었던 기억이 있단다. 그리고 시어머님이 시아버님과의 밥상 차별을 두셨다고 한다.

그에 반해 나는 밥상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친정 엄마의 외가가 떵떵거리던 집안이었단다. 그래서 그 어려운 역사의 혼돈 속에서도 쌀밥을 드셨단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외삼촌의 주색잡기로 모든 재산을 다 날렸단다.

그래서일까? 친정 엄마는 보리밥을 잘 드시지 않았다.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보리밥을 싸서 학교를 가야할 때도 친정 엄마는 보리밥을 드시지 않았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다.

생활이 바뀌면서 몸이 변화하는 것일까. 아이들 낳고 키우고 하면서 어찌나 배가 고픈지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했다. 그래서 당기는 대로 많이 먹었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내 것 다 먹고 남의 밥상에 수저를 가져가 또 먹어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저녁은 굶어도 배고픈 줄을 모르는데 아침과 점심은 전혀 굶지를 못한다. 무엇인가 속에 넣어야 활동을 할 수 있다.

노인복지관 수업을 가면서 아침 수업 마치고 이동을 하면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문예창작반 수업을 들어가면 어르신들이 꼭 물어보시는 것이 있다.
“선생님, 점심 식사 하셨어요?”

순발력이 없어 얼버무리는 내가 점심을 먹지 못했음을 금방 눈치를 채신다. 아차, 싶어도 이미 내 태도와 표정에서 들키고 만 것이다.

어찌나 나를 안쓰러워하시는지. 그러다 어르신 한 분이 슬그머니 나가시기에 손을 씻으러 가신 줄 알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 손에는 빵과 우유가 들어있었다.

가까운 곳에는 가게가 없다. 그러자 다른 어르신들이 ‘잘했다’하며 칭찬을 하시는 것이다.

그 후로도 어르신들을 돌아가면서 내 간식을 준비해 놓으셨다.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내 마음을 가로질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복지관 현관을 막 들어서는데 나를 잡아끌고 식당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다. 복지관에 도착하면 식당은 정리가 다 되어가는 시간 때이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서자 식판으로 덮어 놓은 식판 한 판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그만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어려도 한참 어린 강사가 배고플까봐 밥이 식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덮어서 미리 받아 놓으신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부터 전쟁과 보리고개로 숱한 배고픔과 눈물과 아픔을 다 몸으로 겪으며 살아오신 분들이다.

담당 직원은 두 팔로 원을 그려가며 “선생님, 어르신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셔서 좋겠어요.” 한다. 관장님도 그 모습이 좋았는지 다른 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식당에 밥 받아놨어요.” 하신다.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그분들이 어려운 시절을 다 견디시고 겪으셨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을 우리가 다 살아왔으니까 내 자식들은 그런 끔찍한 일들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자 모두 다 동의를 하시는 것이다.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살아오신 분들. 정말 존경스럽다. 역사의 쓰라린 일들을 다시 겪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작은 식판 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방학에 들어갔다. 숙제로 일기를 내 드렸다. 한 분당 60일의 일기장을 드렸다. 중간에 전화를 하니 열심히 쓰고 계시단다.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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