勸酒歌 (권주가) - 백거이
그대에게 권하는 한 잔의 술을 사양치 말고/그대에게 권하는 두 번째 잔도 머뭇거리지 말게/세 번째 잔을 권하면 그대도 비로소 알겠지/오늘의 얼굴이 어제보다 더 늙었으니/취했을 때가 깨었을 때보다 더 나음을/천지는 아득하고 장구한데/달과 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가 버리니/죽은 뒤 북두칠성을 떠받칠 만큼의 황금을 쌓아도/살아서 한동아리의 술을 마심만 못하리.

중국 당나라 때 시로 문단을 평정한 백거이는(772-846) 지금의 저장성 지역 지방관 재직 시절 기생을 데리고 질펀하게 몇 날 며칠을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백거이는 친구 원진에게 이런 시를 써 보내 자랑했다. "이 일을 그대에게 알리면 그대 마땅히 부러워할 것을/닷새 동안 맑은 물결, 밝은 달 아래 지새웠다네."

기녀들과 질펀한 밤을 보내는 일은 그 당시 관료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었는가 보다. 조정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던 백거이는 강주로 좌천되기 전까지 곤궁했던 백성들 편에 서서 당시의 사회상을 비판하고, 조정의 부패를 폭로하는 풍유시를 많이 썼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백거이의 권주가를 읽다보면 술 마시는 사람의 풍류가 이해가 된다. 세월이 흘러감과 아득한 장구한 만물을 보며 어찌 허무함을 느끼지 않으랴.

흔히들 표현하는 알딸딸하다는 말을 이해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진짜 술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취하여서 인사불성, 말 그대로 주변의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술 마시는 풍류인 것일까.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술의 신 박카스가 포도주를 만들 때 사자 피, 양의 피, 원숭이 피, 돼지 피를 섞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술을 마시면 사자처럼 용감해지고, 순해지고, 원숭이처럼 노래하고 춤추다가 돼지처럼 지저분해지는 이유란다.

전혀 술을 못하는 사람이지만 술자리는 잘 어울린다. 몇 잔술에 입이 풀리면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는 사람도 많다. 그런 이들과는 또 어울리고 싶다. 내게 권하지도 강요하지도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충분히 웃고 떠들고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자리를 굳이 싫다는 사람 강요해서 불쾌한 자리로 만들기도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불편하면 피차간에 정중하게 함께 자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권하는 것은 어떨까.

술자리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불편하다는 말은 핑계이다. 또한 술을 마시지 못하면 융통성이 없다는 말도 헛말일 뿐이다. 블랙아웃 상태에서 하는 헛말이 훨씬 더 많다.

또한 긴 시간을 책상머리에서 공부만 하던 아이들을 굳이 술자리로 내몰아서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유인 것일까.

연일 터지는 채 피지 못한 아이들의 청춘이 술로 인해 꺾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절망을 느낀다. 겨우 핑계하는 것이 입시 문제만일까. 충분히 놀 수 있는 문화가 없음이기도 하리라.

술을 마시고 안마시고 이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면 왜 이 자유마저 빼앗으면서 술 마시는 자리에 동참하라 하는 것인지.

심지어 흉악범에게도 인권을 따지는 때에 술 마시고 안 마시는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모임을 같이 하는 장소에서 마시는 아이들은 마시는 아이들끼리, 안 마시는 아이들은 안 마시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면 된다.

술을 마셔도 시인이 되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시인이 되는 그런 날을 꿈꾸어 본다.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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