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파기(Digging) - 셰이머스 히니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서 /몽당 펜이 쉬고 있다. /권총처럼 아늑하고 비밀스럽게. /창문 아래 저 너머 자갈밭 속으로 /삽 밀어 넣을 때마다 짜그락거리는 소리. / 아버지가 땅을 파고 있다.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니 / 화단 사이에서 엉덩이에 힘주어 /나지막이 몸을 굽혔다가는 /이십 년 세월의 리듬을 타고 /감자밭이랑 따라 또다시 /꾸부정 새우등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모습. //(생략)어쩌면 꼭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아버지는 삽질을 잘도 하시는지. //(생략)질 좋은 토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땅파기를 계속하면서. //머리 속을 맴도는 /감자 구덩이의 차가운 내음. /질컥한 토탄 덩어리가 퍽, /찰싹 하며 무너져 내리는 소리. /나무뿌리 사이 흙더미 위로 /삐죽이 머리 내민 토탄 덩어리. /그러나 내게는 없다, 그들을 뒤따를 삽이.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에서 /몽당 펜이 웅크려 쉬고 있다. /이것으로 나는 땅을 파야지.

셰이머스 히니는 예이츠 이후 최고의 아일랜드 시인으로 손꼽히며 199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는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와 선조들의 수고로운 삶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땅을 팠던 그 마음을 이어가고자 하는 아들의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시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땅을 팔 삽이 없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서 권총처럼 쉬고 있는 몽당 펜으로 땅을 파야겠다고 말한다.

부럽다. 사람의 마음 밭을 파고들겠다는 시인의 선언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선조들의 뼈아픈 삶을 이겨낸 수고로움이 지금의 후세들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땅은 우리에게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땅의 가치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임을 알겠다. 흙의 부드러움 속에는 사람을 살리는 온갖 생명의 뿌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아버지들의 삶도 결코 쉬운 삶은 아니었다. 수없는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산처럼 꿋꿋하게 서서 이 나라를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야속한 삶이었으리라. 자식에게만은 가난과 전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살았던 아버지들이었지만 지금은 뒤로 밀려난 듯한 아픔은 무엇 때문일까?

친정아버지는 땅을 파시던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팍팍한 생활로 인하여서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싶어 하셨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 원망스러움이 사회나 가족에게 때때로 돌려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받게 되는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남게 되었다.

이제 그 마음의 상처들을 모두 파내는 작업을 해야 하리라. 마음의 깊은 쓴뿌리는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아픔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되니 이곳저곳에 겨울을 이겨 낸 땅에 거름을 내고 땅을 갈아엎고 있다. 그러면 그곳에서 새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벌써 여기저기 핀 봄꽃들이 화려하게 피었다. 그리고 그 다음을 이어 줄 봄꽃이 꽃망울 피어내고 있다.

겨우내 쉬었던 마음도 갈아엎고 거름을 내고 씨를 뿌려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는 봄이다.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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