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산책일고散策一考

최창배

임종복 기자입력 : 2013. 03. 19(화) 22:12

가가

걷는다는 것, 뭔가 고뇌하고 번민에 빠져들기도 하고, 고귀하고 진지한 상념에 젖어들기도 한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때보다 서서 걷는다는 것은 사뭇 경쾌한 리듬을 느끼기에 십상이다.

물가나 언덕 , 덤불숲이나 가시밭길을 걷기도 하는 인생여정이 그럴 것이다. 누가 시켜서 걷는 것도 아니고, 마냥 걷는 것이 운동으로 건강에 좋다고 해서 걷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제풀에, 길이 있기에, 길이 아니더라도 움직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함을 추구하여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을 감당 못한 채, 걷다보면, 주변의 경치에 따라 침묵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반목과 갈등으로 인한 직장과 사회의 불만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하는 의미에서 가려내고, 거둬내고, 들추지 말아야 할 것은 감추고 싶어 하는, 내면의 선택을 필요로 하여 생각들을 접어들게 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 또는 직업상 서 있어야 하는 사람,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사유해서가 아니라도, 걷는 것은 바람을 맞고, 낙엽을 밟고 오래된 침묵도 밟고, 그래서 쓸쓸함도 고독도 일상의 궤도를 떠나 나름대로 선택과 준비를 깊게 담아내고자하는 마음으로 걷노라면, 사회의 통념도, 귀찮고 하찮은 세상만사도 별것 아닌 것처럼, 가슴에 숨겨놓은 것을 깨우쳐내는 것이 “걸음”의 미학이 아닐까한다.

어린시설 시오릿 길을 마다않고 학교 길에 오를 때면, 여름엔 땀으로 범벅이 되고, 도시락의 김칫국물로 인한 가방은 누렇게 물들고, 겨울이면 세찬 바람에 손발은 동상에 걸려 한 가족이 한 방을 사용하던 때인지라, 콩 자루에 발을 넣고 자면 효과가 있다하여 자다보면 온 방안에 콩이 널려 이리저리 찔렸던 시절의 “걸음”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 오늘날의 “올레길”이니, “둘레길”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생존과 경쟁을 위한 “걸음”과 현대사회의 “걸으며 생각하는 여유”와는 의미가 달랐던 시기였다.

낮게 자리한 상쾌한 아침의 산딸기는 상큼함을 자랑하고, 땅거미가 지기도 전에 일상에 따라 줄을 치기 시작하는 그들의 재빠른 솜씨도, 본디 만전을 위한 준비태세에 돌입하는 자세에 가슴을 웅크린다.

문득, 지나쳐가는 옆 사람들의 생김새와 옷매무새를 보면 각양각색이지만, 걷는다는 것은 똑같은 모습들이라, 단지 팔과 다리만으로 움직임을 과시하지만, 그 면면의 가슴속에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를 굳이 따져 본다면, 따뜻함, 냉정함, 쓸쓸함, 고뇌에 가득 찬 판단의 기로에 서 있음과, 심한 가슴앓이로 몸살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 행여 들킬세라 조심해하는 모습, 이러한 모습들이 날카롭게 엉켜있는 인간들의 속내에 서로 가슴아파하는지 모른다.

나, 자신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커졌다가 작아 지면서의 “반복의 추”가 더디거나, 느리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진대, 그러면 그럴수록 외로움이 추가되어 나이테만 생기게 되니, 어쩔 수 없는 도리가 아닐까?

매일 미련할 정도로 몇 십 분씩 걸어보지만, 내 생각의 “걸음”과 “산책”의 결과는 어디까지 인지 모른다.
다만, 나 자신, 내 본디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걷는 것만이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