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해결하실 수 는 없습니다. 예컨대, 사막에 숨어 있다가 낙타를 덮치는 사자를 임금님께서 막아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계곡에 심어 놓은 옥수수 뿌리를 파헤치는 멧돼지와 언덕에 심어 놓은 포도 덩굴을 먹어 치우는 여우들을 어쩌시렵니까? 어부들의 배를 불태우고 돈을 빼앗는 해적들은 다 어쩌시렵니까?

마을마다 넘치는 거지들과 바닷가 늪지에 사는 문둥병 환자들은 다 어쩌시렵니까? 임금님은 문둥병 환자와 함께 잠을 자거나 거지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까?

저 무서운 사자와 멧돼지가 임금님의 말씀을 고분고분 따를까요? 간사한 여우가 임금님의 말씀을 순순히 따라 줄까요? 아닙니다. 임금님은 그 모든 걸 해결하실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짐은 한 사람이 짊어지기엔 너무나 무겁고 큰 것입니다. 임금님은 임금님으로서의 역할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니 제발 임금님의 옷을 갖추어 입고 돌아오십시오. 그럼 제가 저 황금 왕관을 씌워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임금님의 역할입니다.”

이 내용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어린 임금님』중 대관식이 거행되는 성당의 신부님의 말이다.

양가죽 옷에 나무 지팡이, 찔레나무 줄기 왕관을 머리에 쓴 어린 임금님이 대관식을 거행하려고 하자 귀족들은 칼을 들고 군중들은 와와 소리를 지르며 성당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어린 임금님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기도를 마쳤다. 천천히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순간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은 임금님의 몸을 감싸고 짚고 있던 지팡이는 꽃망울이 맺히더니 백합꽃이 피고, 찔레나무 가지에도 붉은 꽃봉오리가 맺히고 줄기는 은빛으로 빛을 뿜었다. 허공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린 임금님은 목동처럼 자라다가 궁중에서 살게 된다. 그런데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고 온갖 보석에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가장 화려한 대관식을 생각한다.

하지만 대관식을 하루 앞둔 밤에 어린 임금님은 자신의 대관식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꿈에서 본다.

잠에서 깬 어린 임금님은 목동 시절에 입었던 옷을 입기로 결심한다. 자신 때문에 죽어가는 백성들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종들과 시민들 심지어 신부님도 화려한 임금님 복장을 원했지만 끝까지 고집한다.

고민스러워했던 부분을 작가는 신부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리더의 태도에 대해서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리더 한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인정한다.

하지만 어린 임금님이 깨달은 것은 대관식의 화려함이 아니라 화려함이 있기까지의 사람들의 고단함을 알았다. 자신의 옷과 왕관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슬픔이 배어있기 때문에 결코 화려한 대관식을 치루지 않겠다는 어린 임금님은 결코 어린 임금님이 아니다.

진정으로 임금으로서의 마음 씀씀이를 알았기에 하늘에서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준 것이다. 리더, 녹록한 위치는 아니다. 팀원 각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해 준다면 그렇다고 꼭 어려운 자리만은 아니다.

알퐁스 도데의 꿈이 내 꿈이다. 작가는 글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러는 작가의 위대함이 한없이 부럽다.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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