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가 분해되어 지구의 외각을 이루는 가루' 이렇게 흙의 사전적 의미는 딱딱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흙의 정서는 그리움, 생명, 추억, 고향 등등 아름다운 마음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때때로 '흙'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밀접하다. 또한 성경에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하는 말도 있다.

심훈의 '상록수' 이광수의 '흙' 펄벅의 '대지' 등은 결국은 흙으로 이루어진 논밭과 농촌을 중심으로 한 소설이다.

그 외에 수많은 문학작품에서도 흙은 등장하고 있다.
내가 버스를 주로 타는 면내에 모퉁이에 허름한 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이 비워진지는 거의 10여 년 넘게 보았다. 그 집 마당에 커다란 뽕나무가 있었는데 검은 오디가 길가에 수없이 떨어져 밟히기도 하고 바닥을 물들여 놓기도 했다.

그런데 올 겨울에 그 집을 헐어버렸다. 그러자 대천에서 오던 차들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훤하게 다 보이는 것이다.

헐어버린 자리에 눈이 쌓이고, 녹고를 반복하더니 새봄이 다가왔다.
어느 날 버스를 타려하는데 노부부가 밭을 일구고 있었다.

굵은 돌들을 리어카를 실어 나르고 잔돌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그다지 큰 평수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농사일을 알지 못하는 나는 까마득하게 보였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밭은 보드라운 흙으로 변해있었다. 거친 잔해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나는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그곳에 작물을 번갈아가며 심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눈에 띈 것은 길가 쪽의 약 1미터 정도 길이에 심겨진 작물은 다른 풍성하게 자란 작물에 비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그리고 한 동안 여름도 보내며 잊고 있었다.
다시 보드랍게 밭을 갈고 두둑을 세우더니 줄을 맞추어서 김장배추와 열무 등을 곱게 심어 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곳의 열무가 자라지 않았다.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이 들었지만 밭주인을 볼 수 없어 물을 수 없었다.

이제 김장을 할 만큼 크게 자라도 그곳은 자라지 않고 볼품이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던 나는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서 있었다. 드디어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왜 여기만 이렇게 안자라는 거예요?"
"응, 그곳은 보일러가 있던 자리인데 공구리가 이만큼 들어있어서 내가 캐낼 수 없어 그냥 두었더니, 흙이 얇아서 그래."
"아, 예에……."

아니나 다를까 김장을 하느라 요즘 뽑는데 그곳의 열무는 무언가를 담기에는 볼품이 없었다.

버스에 올라 탄 나는 아찔한 생각도 들었다. 내 속에 있는 생명의 흙의 깊이는 얼마 만큼일까? 외면으로 자라는 나의 속생각의 열매들은 얼마나 잘 자라고 풍성함의 열매를 거두게 될까?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들이 많다. 또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변질될 수 없는 것들. 흙의 생명성과 우리 마음의 양심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할아버지의 ‘흙이 얇아서 그래.’ 바쁜 일상에 밀려난 흙들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돌아올까. 아니면 다시 회복 될 수 있을까.

서늘함이 하늘을 더 파랗게 만들어주는 계절에 흙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더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이제 흙은 내년을 위해 ‘쉼’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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