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기고] 아동문학가 김진경
2000년 3월에 이곳 보령으로 이사 왔다. 보령의 추억은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회장단 수련회가 있어서 대천해수욕장에 왔을 때가 1986년이었고, 결혼 후 교회에서 95년도 여름에 다시 왔고, 세 번째는 살려고 이곳에 온 것이다. 이제는 보령이 내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다.
봄이면 봄꽃이 꽃대궐을 만들었고, 그렇게 곱게 연약한 줄 몰랐다. 또한 겨울을 이겨내고 핀 꽃이어서 강하게 느껴졌다. 봄밤의 꽃은 등불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초여름이면 물댄 논은 시리도록 눈이 부셨다. 아카시아가 향기를 퍼뜨리면 논은 물과 모로 가득차서 손길들이 분주하게 오고갔다. 여름은 바람과 장마가 매섭도록 몰아쳤다.
가을이면 말 그대로 그 넓은 논이 황금빛으로 출렁거렸다. 초겨울의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은 쓸쓸하면서 다음 해를 기약하는 기다림으로 있었다. 하늘은 맑고 높고, 파란 물이 푹 쏟아질 것 같았다. 은빛 갈대의 손짓은 화려하기만하다.
겨울은 눈이 푹신 쌓이면 버스가 들어오지 못해 외출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세상이 있냐는 말들이었다.
사계절 변화가 뚜렷해서 온몸으로 그 변화를 느끼며 살았다. 그래서 사계절을 기다리는 재미가 적잖이 행복하다. 사람이 보고 느끼는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창조주가 준 가장 큰 복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집에서 1분 거리에 초등학교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큰아이가 2학년인 2002년 겨울이었다. 삼한사온이 실감이 나던 해였다. 저수지가 꽁꽁 얼었던 것이다. 낚시꾼들이 와서 얼음구멍을 만들어서 낚시를 하고 나면 그 얼음구멍마저도 얼어붙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종이박스에 끈을 묶어서 그 박스에 아이 둘을 태우고 저수지를 돌았다. 빙글빙글 하늘도 돌고, 오서산도 돌고, 얼음판도 돌았다. 아이들은 너무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종이 상자 썰매에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그 이후 단 한 번도 얼지 않더니 올 겨울의 추위에 저수지가 꽁꽁 얼었다. 그런데 반가운 마음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물론 종이 상자 썰매를 타기에 아이들이 커버리기도 했지만, 그때의 날씨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여름의 그 엄청난 더위에 무척 지치고 짧은 가을을 보내며 아쉬웠는데, 겨울이 길고 너무 추우니 사계절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슬펐다.
이렇게 자꾸만 몸으로 계절이 전혀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기후학자들이 말하는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오만방자함과 질서를 무시한 파괴로 인해 자연은 우리에게 역습을 하고 있다.
이 자연의 역습에 어떻게 해야 하나? 이왕 이렇게 된 것 빨리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부단한 노력을 해서 이 상황이라도 지켜야 하는 것인지.
후손들에게 ‘자연을 망친 파괴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겠지. 후손들이 사전에서 사계절을 찾아보고, 멸종 된 동물들을 보면서 우리 세대를 보고 ‘자신들은 자연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고는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뭐야’라는 원망을 듣게 되겠지.
미국의 마지막 추장인 시애틀 추장이 1854년 그의 연설문에서 “이 땅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일 뿐” 이라는 말이 귓속에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