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首丘初心), 이 말은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또는 죽을 때라도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향(故鄕)이 아니던가. 그 이유는 자기가 태어난 곳이며, 나아가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 그리고 형제,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장밭 고갯길》



옛고향 터전 꽃향기도 그대로
추억도 다함께 모락모락하지
몇 개 신나던 이야기와
몇 개 슬프던 이야기들
고구마 쫀대기처럼 쫄깃쫄깃대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초승달 아스라하면 아스라한 대로
두렵게 지나던 대나무 숲길
초조하고 조급하던 고무신 발길
십 여리 지루하게 걸어가던 학교길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여러 번 들은
무섭고 겁나던 여우의 전설들
윗동네 영현 가는 길가의 포강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나
가끔은 꿈속에도 보이던 장밭 고갯길


구슬같이 찬란한 시냇물 건너던 그녀
반딧불이 쫓아 하늘을 날아다니던 곳
지금은 다 부서지고 무너져버린 곳
내 마음 깊은 곳에만 겨우 남아 있는 곳
친구들 벌써 반딧불과 여행을 떠났지


불야성의 도시에서도 잊지 않았던
꿈속에서도 억수로 그리워했던
내 고향 영혼의 안식처
아직도 키 큰 푸른 대나무여
아련하고 따스하고 느긋하게 행복했던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는 석정리의 밤.


* '장밭 고갯길'(경남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에 있다)

▲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