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오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정민준 기자입력 : 2022. 12. 20(화) 10:03
▲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동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최근 영국 임페리얼 대학에서 선진 35개국의 ‘기대수명’ 변화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2030년 한국은 세계 최고 장수국가가 된다. 2030년 한국 여성은 인류 최초로 기대 수명 90살 돌파하고, 한국 남성 기대 수명도 84세를 돌파하여, 한국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기대수명을 가진다는 것이다. 미국은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난 이후 미국에서 항공기 이용객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비행기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장거리 이동 시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기 시작했다. 대중은 교통사고 및 화재 등 재난사고로 죽는 사람이 당뇨로 죽는 사람의 비율보다 300배쯤 높다. 하지만 실제 당뇨로 죽는 사람의 비율은 모든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4배가 더 높고, 사고로 죽는 사람의 비율과 질병으로 죽는 사람의 비율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18배 더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용성 휴리스틱이라 한다. 대형사고나 지진이 일어나면 관련 보험가입자 수가 갑자기 느는 것처럼 언론이나 주변에서 최근에 발생한 사건 사고를 체험한 대중들이 유사 사건 발생 위험을 객관적 사실보다 훨씬 위험하게 생각하여 이에 대비하는 현상이다. 우리도 이에 대한 보험 판매가 급증한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아쉽게도 OECD 국가 노인빈곤율을 살펴보면 우리가 43%, 미국인 23%, 일본이 19%, 프랑스가 4%로써 최악의 빈곤국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흥망은 결국 국민의 튼튼한 건강에 달려있고 인간의 행복은 건강 속에서 찬란한 법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녀 시빌은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 무엇이든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시빌은 한 움큼의 모래를 쥐고는 모래알 수만큼의 수명을 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젊음을 유지하게 해 달라는 말을 못 하였기에 나이 드는 만큼 계속 늙어갔다. 이것을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의 에피 그래프에서 이렇게 인용했다. 나는 쿠마이의 무녀가 병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넌 소원이 뭐냐?) 하고 물었을 때 무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죽고 싶어'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는 55세에 나는 이제 너무 늙어 정치를 못한다 선언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3년 후 거룩하게 죽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장수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장수하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중년기 사람들도 노후는 먼 훗날 일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후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또한 나는 늙지 않고 오랫동안 청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환상에 젖어 노후를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아무리 장수 유전자를 깨운 들 결국 인간은 죽는다. 그렇다면 그 적당함이란 언제일까 자문해보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을 '인정'받고 싶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으니, 어쩌면 이 세대 간 부조화는 숙명이기는 하다.
인도에서 들은 이야기다. 저승사자가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을 예견한 한 사나이가 이 세상에 미련이 너무 많이 남아 저승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가지 않을까를 골똘히 생각하다 묘안을 떠올렸다. 그가 사는 뒷동산에 창문이 없는 튼튼한 집 한 채를 짓고 입구만 열어놨다. 하루는 저승사자가 와서 “인간으로서의 수명이 다됐으니 저승으로 가야 한다”며 재촉했다. 그러자 사나이가 저승사자를 붙잡아 자기 집에 가두고는 입구를 봉쇄해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는 이승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백 년 명줄이 길어지니 사는 게 점점 지루해진다. 하릴없이 멍청하게 숨만 쉬고 지내자니 저승사자를 가두기 전보다 고통이 커갔다. 결국 심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큰 병을 얻고 말았다. 그에게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죽을까’ 온종일 그 생각만 났다. 고민 끝에 그는 집에 가둬놨던 저승사자를 다시 불러내기로 했다. 저승사자가 있어야 염라대왕에게 자신을 안내해줄 것이 아닌가. 이렇게 무의미하게 살아온 시간, 그리고 살아갈 시간에 대한 허망함은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장수가 축복이 되려면 국가의 일자리 창출이나 노인복지가 필수이지만 각 개인도 살아가야 할 시간에 대한 부담, 즉 삶의 지루함을 위해 독서하며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은 사회의 유휴 노동력으로서 죽을 날만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은 물론, 그 시간을 맞이하는 노인들 자신들이 다 산 사람이 아니라,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 오래 살수록 그만큼 욕됨이 많다고 했다. 이것이 단순한 생명 연장의 재앙과 두려움의 ‘100세 시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축복과 건강과 행복의 100세 시대는 무엇보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어야 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신념의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정민준 기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녀 시빌은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 무엇이든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시빌은 한 움큼의 모래를 쥐고는 모래알 수만큼의 수명을 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젊음을 유지하게 해 달라는 말을 못 하였기에 나이 드는 만큼 계속 늙어갔다. 이것을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의 에피 그래프에서 이렇게 인용했다. 나는 쿠마이의 무녀가 병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넌 소원이 뭐냐?) 하고 물었을 때 무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죽고 싶어'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는 55세에 나는 이제 너무 늙어 정치를 못한다 선언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3년 후 거룩하게 죽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장수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장수하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중년기 사람들도 노후는 먼 훗날 일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후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또한 나는 늙지 않고 오랫동안 청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환상에 젖어 노후를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아무리 장수 유전자를 깨운 들 결국 인간은 죽는다. 그렇다면 그 적당함이란 언제일까 자문해보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을 '인정'받고 싶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으니, 어쩌면 이 세대 간 부조화는 숙명이기는 하다.
인도에서 들은 이야기다. 저승사자가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을 예견한 한 사나이가 이 세상에 미련이 너무 많이 남아 저승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가지 않을까를 골똘히 생각하다 묘안을 떠올렸다. 그가 사는 뒷동산에 창문이 없는 튼튼한 집 한 채를 짓고 입구만 열어놨다. 하루는 저승사자가 와서 “인간으로서의 수명이 다됐으니 저승으로 가야 한다”며 재촉했다. 그러자 사나이가 저승사자를 붙잡아 자기 집에 가두고는 입구를 봉쇄해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는 이승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백 년 명줄이 길어지니 사는 게 점점 지루해진다. 하릴없이 멍청하게 숨만 쉬고 지내자니 저승사자를 가두기 전보다 고통이 커갔다. 결국 심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큰 병을 얻고 말았다. 그에게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죽을까’ 온종일 그 생각만 났다. 고민 끝에 그는 집에 가둬놨던 저승사자를 다시 불러내기로 했다. 저승사자가 있어야 염라대왕에게 자신을 안내해줄 것이 아닌가. 이렇게 무의미하게 살아온 시간, 그리고 살아갈 시간에 대한 허망함은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장수가 축복이 되려면 국가의 일자리 창출이나 노인복지가 필수이지만 각 개인도 살아가야 할 시간에 대한 부담, 즉 삶의 지루함을 위해 독서하며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은 사회의 유휴 노동력으로서 죽을 날만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은 물론, 그 시간을 맞이하는 노인들 자신들이 다 산 사람이 아니라,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 오래 살수록 그만큼 욕됨이 많다고 했다. 이것이 단순한 생명 연장의 재앙과 두려움의 ‘100세 시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축복과 건강과 행복의 100세 시대는 무엇보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어야 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신념의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정민준 기자jil3679@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