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ctn]고요히 흐르는 보령댐 옆으로,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함께 고즈넉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길을 따라가다, 한껏 자태를 뽐내며 너그러이 미소짓는 무궁화꽃을 넌지시 바라보노라니 불현듯 유년시절이 그리웠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M수련원 옆의 샛길로 들어서니, 벌써 마중 나온 듯 시냇물소리가 제일 먼저 반긴다.

맑고 투명한 물소리가 금방이라도 가재가 나올 듯하고 송사리, 빠가사리, 피라미가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같이 어울려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개울 옆으로, 예전에는 정말 평화롭고 한가로이 여러 가구가 살았었던 정겨운 안식처였던 그런 곳이었다. 배산임수라고 하는 사실 그대로였다.

뒷편엔 삶의 더듬이처럼 자리한 울창한 숲이 자리하고, 앞엔 지저울대던 새소리가 맴돌고, 약간은 넓게 자리한 장독대가 점점이 박혀있던 자리가 너무도 선하게 느껴졌다.

옆엔 청아하게 흐르는 계곡물이 있으니, 이보다 더 무릉도원이 따로 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우리일행이 이곳에 당도한 목적은, 그저 가을 하늘과, 단풍과, 시골정취만 만끽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가을의 절경과 더불어, 으름, 다래, 머루를 따러 온 것인데, 아뿔싸 열매는커녕, 그냥 민둥산이니 어찌하오리까? 다름이 아니라, 서산에 사는 조카가 오랜만에 시간을 쪼개어 왔는데, 이야기 와중에 고향(인근에 있는 청라)에서 할아버지에게 사랑받았던, 그 때 시절 그 맛을 못잊어 으름이 먹고 싶다는 이야기 하던 찰나에, 매형이 이곳에 오면, 한 소쿠리 정도는 딸 수 있다는 호언장담(?)이 있었기에, 여길 오게 되었는데, 아뿔싸 매형은 실망과 함께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수 년 전에 왔었을 때는, 제법 토실한 과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외지인이 토지를 소유하는 바람에 개발로 인하여, 그 때의 흔적이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었다.

이미, 올라오는 도중에 가족묘와 납골당이 자리하고, 감나무 등이 이식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렇게 불과 몇 년 사이에 소유자의 개발로 인하여 부동산의 값어치 때문에 땅의 존재가 바뀌는 것이었다.

하여튼, 조카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 될 듯 싶었다. 야트막한 곳부터 부지런히 찾아다니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으름넝쿨이 있었다. 넝쿨 밑을 자세히 살펴보니 설익은 으름 몇 송이가 매달려 있었다. 나름대로 하나 둘 따다보니, 제법 상자가 채워져 갔다.

생활력과 삶의 의욕이 강한, 조카는 가시넝쿨을 헤치고 포복하다시피 기어다니며 살짝 벌어진, 제법 먹음직스런 으름을 열심히도 땄다. 채워져 가는 상자를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 했다 싶었다.

누나는 이곳이 사람 살던 곳이라, 신선하고 향긋한 머위가 잔뜩 있는 곳을 쫒아 다니며 즐거워했다.

풋풋한 향기를 지닌 땅도 오랜만에 사람냄새가 나는지, 나름의 고유하고 진한 땅 냄새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토록 오래 사람이 그리웠던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이제, 으름도 따고, 머위도 채취하고, 밤도 주워 먹고, 대추도 몇 알 맛보고, 홍시도 맛보고, 가을 향기가 온 몸을 맴도니, 그동안 응어리지고, 스트레스 쌓여있던 내 마음마저 후련했다.

게다가, 푸르른 호수와, 쭉 뻗은 코스모스길, 인간미 넘치는 대화, 훈훈한 인심을 마음보따리에 가득 담고, 멋진 가을 하늘과 더불어, 맑은 가을 공기를 온 가슴에 품으니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아 보였다.

저녘노을과, 멋진 단풍들을 뒤로하고, 이곳을 떠나자니 너무 아쉽지만,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또 다른 긍정의 에너지를 충전하고자 한다.

2011.10.30 보령댐 상류에서

임종복 기자 imjbpr@naver.com 임종복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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