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상추쌈 어때요
정민준 기자입력 : 2023. 06. 26(월) 10:24
▲세종시 홍판서댁에서 열린 끽와거 “상추쌈 어때요”(사진 자료 출처 유태희씨/제공)
여름이면 우리처럼 상추쌈을 즐기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상추는 원래 인도 북부가 원산지인데 국내로는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기에 중국식 어원대로 생채(生菜)라고 불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름이 변하여 지금은 '상추'라고 부른다. 1988년까지는 '상치'가 표준어였기에 상치라고 불렀고 우리말 바로 쓰기 캠페인에서 항상 '상추(X)·상치(O)'라고 가르치던 단어였기 때문에 아직도 '상치'라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지금은 또 바뀌어서 '상추'가 표준어이다. 상추는 배추와 많이 닮아서 그런지 배추와 가까운 종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국화과 식물이다. 이번엔 상추에 얽힌 시를 몇 수 읊어본다.
《상추쌈》
유득공(柳得恭)/조선(1748(영조 24~?)
밥숟갈 크기는 입 벌릴 만큼
상추잎 크기는 손안에 맞춰
쌈장에다 생선회도 곁들여 얹고
부추에다 하얀 파도 섞어 싼 쌈이
오므린 모양새는 꽃봉오리요
주름 잡힌 모양은 피지 않은 연꽃
손에 쥐여 있을 때는 주머니더니
입에 넣고 먹으려니 북 모양일세
사근사근 맛있게도 씹히는 소리
침에 젖어 위 속에서 잘도 삭겠네
옛날에 중국의 지식인들도 조선의 상추를 으뜸으로 여겼다. 아마 무역하는 사람들과 사신으로 왕래한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그리되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기록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청나라 사람인 까오싀지(高士奇)가 기록한 천록지여(天祿識餘)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당시 수나라 사람들이 고구려산 상추씨가 품질이 좋다며 천금을 주고라도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정조 때 ‘발해고’를 저술한 북학파 실학자 유득공의 시 상추쌈을 읽어보면 파릇한 상추가 입에 들어와 어찌 그리 씹히는 모양을 멋지게 표현하였는지 절로 감탄이 나온다. 또 한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 갈 무렵 의친왕의 명을 받들어 독립운동하기 위해 궁내부대신 김재식이 비밀로 매입한 세종시 부강의 김재식古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끽와거》喫萵苣
김재식(金在植)/조선(1860~1928)
麥飯包萵雙頰寬(맥반포와쌍협관) 보리밥에 상추를 싸 넣으니 양 볼이 불룩하고
葱羹兼啜野廚寒(총갱겸철야주한) 파국을 곁들여 마시니 들밥이 시원하네
苦椒屑醬名纔具(고초설장명재구) 고추가루로 만든 고추장 이름만 겨우 고추장이지
色不全紅味且酸(색부전홍미차산) 색깔이 완전히 빨갛지 않고 맛도 또한 시큼새콤하네
끽와거는 상추쌈 싸먹기인데 100여 년 전, 상추잎에 고추장을 넣어 밥을 싸먹은 사실을 한시(漢詩)에 담은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송암 김재식(金在植1860~1928)이다. 그는 서울에 올라가 왕의 비서실인 궁내부(宮內府)에서 일하다가 1904년 지금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외천리에 귀향했다. 그러다 산수가 좋다고 여겨 지금의 세종시 부용면 부강리로 이사한 것만은 아니고 의친왕의 비밀지령이 있어서이다. 그는 농촌에 생활하면서 사계절 동안에 직접 목격했던 당시 농촌의 전형적인 실상을 3차에 걸쳐 「향거사시즉사(鄕居四時卽事)」 3편 36수의 시에 실제 그대로 그려냈다. 이는 1900년대 초 농촌의 전형적인 풍속 생활을 시로 쓴 농촌의 시사(詩史)이며, 농촌풍속을 보는듯한 한 폭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때는 상추쌈을 손으로 싸 먹으면 입을 크게 벌리게 되기 때문에 예의에 어긋난다 해서 양반들이 상추쌈 먹는 예절을 보면 숟가락으로 밥을 한술 떠 밥그릇 위에 가로로 놓고 젓가락으로 김을 싸 먹듯이 상추를 싸서 먹은 다음 된장을 떠먹었다고 하니 썩 맛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 다시 애절한 사연 하나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6.25 전쟁 당시 포항여중 전투에 참전한 학도병 이우근 군은 편지를 품은 채 전사했는데 상추쌈을 먹고 싶다는 구절이 안타깝다.
“어머님,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중략)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지금도 나는 여름에 상추쌈에 매운 풋고추 한번 깨어 물면 무더운 여름 어느새 저 전월산을 넘는듯하다. 이 상추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지금의 내게 다가서 있다. 일컬어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I am what I eat )이듯 먹거리는 대를 이어 발전되고 ‘추억을 맡기어’으로 뇌에 영구 각인된다. 망고스트리트(The House on Mango Street)로 알려진 여성 작가 산드라 치스네로스(Sandra Cisneros)의 이야기 중 ‘작은 기적, 지켜진 약속’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꼬리를 삼켜버린 뱀이다. 나는 나의 과거이고 나의 미래이다. 나의 모든 조상의 조상들은 내 배 속에 있다. 모든 나의 미래와 과거도 내 배 속에 있다.
▲ 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정민준 기자
《상추쌈》
유득공(柳得恭)/조선(1748(영조 24~?)
밥숟갈 크기는 입 벌릴 만큼
상추잎 크기는 손안에 맞춰
쌈장에다 생선회도 곁들여 얹고
부추에다 하얀 파도 섞어 싼 쌈이
오므린 모양새는 꽃봉오리요
주름 잡힌 모양은 피지 않은 연꽃
손에 쥐여 있을 때는 주머니더니
입에 넣고 먹으려니 북 모양일세
사근사근 맛있게도 씹히는 소리
침에 젖어 위 속에서 잘도 삭겠네
옛날에 중국의 지식인들도 조선의 상추를 으뜸으로 여겼다. 아마 무역하는 사람들과 사신으로 왕래한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그리되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기록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청나라 사람인 까오싀지(高士奇)가 기록한 천록지여(天祿識餘)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당시 수나라 사람들이 고구려산 상추씨가 품질이 좋다며 천금을 주고라도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정조 때 ‘발해고’를 저술한 북학파 실학자 유득공의 시 상추쌈을 읽어보면 파릇한 상추가 입에 들어와 어찌 그리 씹히는 모양을 멋지게 표현하였는지 절로 감탄이 나온다. 또 한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 갈 무렵 의친왕의 명을 받들어 독립운동하기 위해 궁내부대신 김재식이 비밀로 매입한 세종시 부강의 김재식古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
| ▲세종시 홍판서댁에서 열린 끽와거 “상추쌈 어때요"(사진 자료 출처 유태희씨/제공) |
《끽와거》喫萵苣
김재식(金在植)/조선(1860~1928)
麥飯包萵雙頰寬(맥반포와쌍협관) 보리밥에 상추를 싸 넣으니 양 볼이 불룩하고
葱羹兼啜野廚寒(총갱겸철야주한) 파국을 곁들여 마시니 들밥이 시원하네
苦椒屑醬名纔具(고초설장명재구) 고추가루로 만든 고추장 이름만 겨우 고추장이지
色不全紅味且酸(색부전홍미차산) 색깔이 완전히 빨갛지 않고 맛도 또한 시큼새콤하네
끽와거는 상추쌈 싸먹기인데 100여 년 전, 상추잎에 고추장을 넣어 밥을 싸먹은 사실을 한시(漢詩)에 담은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송암 김재식(金在植1860~1928)이다. 그는 서울에 올라가 왕의 비서실인 궁내부(宮內府)에서 일하다가 1904년 지금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외천리에 귀향했다. 그러다 산수가 좋다고 여겨 지금의 세종시 부용면 부강리로 이사한 것만은 아니고 의친왕의 비밀지령이 있어서이다. 그는 농촌에 생활하면서 사계절 동안에 직접 목격했던 당시 농촌의 전형적인 실상을 3차에 걸쳐 「향거사시즉사(鄕居四時卽事)」 3편 36수의 시에 실제 그대로 그려냈다. 이는 1900년대 초 농촌의 전형적인 풍속 생활을 시로 쓴 농촌의 시사(詩史)이며, 농촌풍속을 보는듯한 한 폭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때는 상추쌈을 손으로 싸 먹으면 입을 크게 벌리게 되기 때문에 예의에 어긋난다 해서 양반들이 상추쌈 먹는 예절을 보면 숟가락으로 밥을 한술 떠 밥그릇 위에 가로로 놓고 젓가락으로 김을 싸 먹듯이 상추를 싸서 먹은 다음 된장을 떠먹었다고 하니 썩 맛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 다시 애절한 사연 하나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6.25 전쟁 당시 포항여중 전투에 참전한 학도병 이우근 군은 편지를 품은 채 전사했는데 상추쌈을 먹고 싶다는 구절이 안타깝다.
“어머님,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중략)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지금도 나는 여름에 상추쌈에 매운 풋고추 한번 깨어 물면 무더운 여름 어느새 저 전월산을 넘는듯하다. 이 상추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지금의 내게 다가서 있다. 일컬어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I am what I eat )이듯 먹거리는 대를 이어 발전되고 ‘추억을 맡기어’으로 뇌에 영구 각인된다. 망고스트리트(The House on Mango Street)로 알려진 여성 작가 산드라 치스네로스(Sandra Cisneros)의 이야기 중 ‘작은 기적, 지켜진 약속’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꼬리를 삼켜버린 뱀이다. 나는 나의 과거이고 나의 미래이다. 나의 모든 조상의 조상들은 내 배 속에 있다. 모든 나의 미래와 과거도 내 배 속에 있다.
▲ 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정민준 기자jil3679@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