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일 동맹(1951년), 한미 동맹(1953년)이라는 현재 동북아 안보 체제 탄생 이후 70년 만에 등장한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세계 경제의 32%를 차지하는 3국 정상이 매년 만나 군사, 외교부터 반도체 공급까지 논의하는 강력한 경제·안보 블록이 탄생했다는 의미도 있다. 북핵 등 공동 위협에 직면해 있고, 안보와 경제에선 서로 의존하면서도 전쟁, 식민 지배 역사 등으로 복잡했던 3국 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섰다. 이것은 위안부와 원자력 오염수 문제를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정치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국제질서는 힘으로 결정되고 역사적 부침이 있었으며 그 앞에 거대한 중국과 대만의 문제도 함께하게 되었다.

투기데스의 함정은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 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해 올 때 극심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하버드대 벨페 국제문제연구소장을 지낸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그의 저서 《불가피한 전쟁(Destined for War, 2017)》에서 세계 도처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서로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했다. 앨리슨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이 급격히 부상하던 아테네와 이를 견제하려는 스파르타가 빚어낸 구조적 긴장 관계의 결과였다고 설명하고,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 불렀다. 당시 상황은 현재의 미·중 관계와 판박이인데, 지난 500년간 지구에서 발생한 투키디데스 함정은 16차례였고, 이 중 12차례가 전면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집계다.

경제적으로는 2014년 이미 미국보다 몸집이 커진 중국의 도전, 헤게모니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 그리고 이 두 거대국가를 이끄는 시진핑과 바이든, 둘 다 ‘위대한 국가’를 외치며 충돌하는 상황에서 17번째 전면전 가능성은 ‘심각(grim)’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중국이 야망을 축소하거나 아니면 미국이 중국에 1등 앞자리를 내주고 2등 뒷자리에 만족하겠다고 물러서지 않는 한 무역분쟁, 사이버공격, 해상에서의 충돌 등은 곧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절박한 상태라는 게 그의 평가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패권국에 신흥국의 도전으로 촉발되는 갈등이기 때문에, 해소 방안은 간단하게 갈등을 안 일으키고 공생하며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만 그런 정치방식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살펴보면 반도체를 둘러싼 미일 경제 패권 갈등으로 미일 반도체 전쟁이 터져, 결국 미국이 반도체 협정을 체결시켜 승리함으로써 끝났지만, 이후 벌어진 2차 반도체 세계대전에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승리했음에도 미국이나 일본이나 순순히 받아들인 이면에는 한국 반도체가 소재 부품 장비를 미국과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과거 일본처럼 한국 기업들을 규제하려고 해도 미국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먼저 들고 일어나 주었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 주식의 절반 이상이 외국자본이고 당연히 미국 자본이 상당액을 차지한다는 것을 안다면 살얼음판을 걷는 우리의 모습도 같이 보게 된다. 아울러 우리가 세계 정치 외교와 경제문제에 중요한 파트너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안정감보다 불안감이 큰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라는 단어 하나 때문일지 모른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아리아인 우월주의’를 내세워 집권해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던 2차 세계대전과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들려왔던 트럼프의 ‘America First’가 모두 같은 에너지를 가진 정치적 구호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패권을 추구하는 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기 어려워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