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CTN 문학]


산원소매(山園小梅)
​ /​林逋(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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眾芳搖落獨暄妍(중방요락독훤연)
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疏影橫斜水清淺(소영횡사수청천)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霜禽欲下先偷眼(상금욕하선투안)
粉蝶如知合斷魂(분접여지합단혼)
幸有微吟可相狎(행유미음가상압)
不須檀板共金尊(불수단판공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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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꽃 못이겨 떨어졌는데 홀로 화사히 고우니
작은 정원의 아름다운 정취를 독차지하네
그림자 비스듬히 맑은 물 얕은 곳에 비껴 있고
그윽한 향기는 황혼 무렵의 달빛 속에서 풍겨 온다
서리 같은 흰 학 내려오려다 먼저 눈치 보고
분 같은 흰 나비가 안다면 마땅히 애를 끊으리라
다행히 나지막히 시(詩) 읊조려 서로 친할 수 있으니
단목 악기나 금 술잔 모두 필요치 않다네



임포가 지은 7언율시의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시입니다. 임포는 송나라 초기에 활동한 은일 시인으로 어릴 적부터 학문에 힘써 박학다식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매화나무를 심어 아내로 삼고 학을 키워 아들로 삼으며 살았습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렀습니다. 그가 이 시에서 표현한 “소영(疏影)”과 “암향(暗香)”은 후세 매화를 상징하는 시어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하지요.

산원소매라는 시는 매화의 특유한 자태미와 고결한 품성을 돌출하여 묘사했습니다. 임포는 매화에 사람의 인격을 부여해서 의인체 시를 구사하였으며, 그래서 인간인 임포와 매화는 정신상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시인의 고고하고 은일한 삶의 정취를 매화의 품성으로 비유한 것이 그의 시를 돋보이게 하고 있지요.

제가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매화는 백화가 시들어 떨어진 엄동에 설한풍을 맞으며 당당하게 꽃을 피우지요. 사람을 감동시키는 맑고 아름다운 경치로 조그만 마당을 독차지 합니다. 따라서 '독(獨)' 자와 '진(盡)'자가 매화의 평범하지 않은 성격과 사람을 황홀경에 빠뜨리는 고상한 운치를 유감없이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 시를 통해 작자는 비록 매화를 노래하고 있지만 실상 자신은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원한 취향을 추구”하는 사상의 소유자임을 진솔하게 묘사했지요.

중간치에 있으면서도 유난히 개화가 느린 우리 동네에 드디어 매화가 귀한 첫 봉오리를 열었습니다. 나비가 보고서 정신을 잃을 거라던 그 고운 자태를 보려 봄비 속에 몇 번이고 찾아갔지요.
그 암향과 자태를 가난한 문장으로 말해 뭐하겠습니까. 비에 젖어 더 맑게 빛나는 그 모습에 홀로 흠뻑 빠져 있는데 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 선생이 고개를 들이밀더니, 매탕(梅宕) 이덕무 선생도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매화를 좀 더 신선하게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방해가 된다며 임포선생의 시를 탓하던 근원 선생까지 ... 어린 시절 호떡 뺏어 먹던 못된 언니 오빠들 마냥 내 봄을 한 입씩 베어 물고 섰는 선생들이 참으로 얄밉지 않겠습니까.
나만의 봄, 내 첫 매화를, 내 호떡을 ...

그러고 보니 지난주의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봄볕이 좋아 시골집 주변 낮은 구릉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아직은 온통 갈빛인데 길섶에 파랗고 작은 점들이 보였지요. 함께 걷던 시댁 고모부님이 "저 꽃이 뭔데 저리 곱게 피었을까?" 하시기에 점잖게 있지를 못하고 아는 대로 곧장 말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큰개불알꽃입니다. 고모부”
그러자 “저렇게 고운 불알은 처음 보네.”하고 맞받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고는 매년 봄마다 큰개불알꽃을 보면 제가 생각날 것이라며 껄껄 웃으셨지요.
매화가 임포, 매탕 선생이 된 것처럼 개불알꽃이 도담(陶潭)이 된다고 생각하니 뭐 나쁠 것도 없겠다 싶고, 흔하고 작은 들꽃이 도도한 여인같은 매화 못지않게 어여삐 보이기도 하였겠지요. 또 누군가에게는 봄마다 떠올릴 얼굴이 되어 그의 봄을 한 입 베어 문다 생각하니 되려 으쓱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제 3월 14일은 온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온종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이네요.

매화꽃 한 송이가 개불알꽃처럼 귀엽게 보였습니다.